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집사 Jul 25. 2024

토마토 후무스 샌드

상상 그 이상의 무엇



 병원에 가는 날이다. 그 핑계로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했다. 선크림과 비비, 립밤. 연이은 무더위로 식욕을 잃은 모공이지만, 화장이라고 하기엔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오늘은 뭐라도 찍어 발라야 하는 기분이었다.



한 달에 한번 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는다. 그 덕에 일찍이 완경을 하고 이른 갱년을 맞았다. 푸석해진 머릿결과 피부, 흐려진 시야. 잇몸도 약해지고 관절도 예전 같지 않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할머니가 되는 하이패스를 끊었다. 교환도 환불도 안 되는 이 표를 손에 쥐고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바라본다. 잊지 않으려 놓지 않으려 더 자주 추억들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다.



조카뻘로 보이는 간호사에게 불려 가 주사를 맞았다. 그녀는 내 손등에 붙여진 정육점 바코드 같은 걸 찍고 능숙하게 이름을 물었다. 어른인 척 태연한 표정을 짓었지만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할머니가 된다면 주사 따윈 겁나지 않을지도... 90도로 꺾인 고개와 허벅지를 꼬집는 다른 손이 아직은 청춘이라고 말해주었다. 간호사의 말에 순한 양처럼 네에, 네에 하며 희박하게 남은 어린 마음을 확인했다. 곱게 늙어야지 순수하게 살아야지. 조금씩, 아주 천천히 전과 다른 바람들이 생겨났다.



병원을 명분으로 드라이브도 하고 근처 로스터리에 왔다. 한적한 카페엔 한가로워 보이는 사람들만 있었다. 이럴 줄 알고 휴가 온 사람인척 하늘하늘한 냉장고 바지를 입고 왔다. 아무리 빗어도 정리되지 않는 머리는 버킷햇의 도움을 받았다. 시원한 바람과 커피향기로 지난밤 설친 잠을 보상받았다. 아이스 라테와 루꼴라 토마토 먹물빵을 시켰다. 집에 에어컨이 고장 난 관계로 어떻게든 이곳에서 오후까지 버텨야 한다.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며 섬처럼 구름처럼 천천히 머물다 가야겠다.

 


살아 생 전 후무스를 먹어본 적이 없다. 어디선가 병아리콩을 으깨면 굉장한 맛이 난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즉흥적으로 시도해 본 것이다. 레몬즙은 현미식초로 큐민은 파슬리로 대체했다. 45번째 전생엔 고대 이집트 요리사였다고 믿고 있다. 기세로 밀어붙였다는 소리다. 당시의 맛을 완벽히 재현할 수 없지만, 진짜 후무스맛이 어떨진 모르지만 추억과 상상은 그 이상을 창조한다고 믿는다.





이전 20화 가지 장아찌 냉파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