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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26. 2024

불금과 헬금 사이 D + 45

20240726 소나기를 기다리는 폭염

일러스트 : 칙칙폭폭 by 최집사



 주말을 코앞에 둔 불금이다. 동시에 집안일이 산더미인 헬금이다. 평소 가사 노동을 최소화하는 대신 주 1일 벼락치기는 불가피하다. 월 마감의 자세가 금요일마다 필요하단 소리다. 냥이들 화장실 씻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필요한 반찬 만들고, 끼니마다 밥 챙겨 먹고 나면 시간이 광속으로 흐르는 걸 몸소 경험할 수 있다.



- ”사모님 도우미 왔습니다. “

- “그래요.” 날씨가 덥죠. 수고 좀 해줘요. “

연이은 폭염에 에어컨까지 맛탱이가 간 관계로 오늘은 가사 도우미 놀이를 해야겠다. 맨 정신으론 도저히 이 방대한 업무량을 소화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취한 조치이다. 싱크대에서 조식을 먹으며 냥이들 1.2도 나란히 불렀다. “자, 리얼하게 알겠지, 큐” 냥이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각자 캐릭터를 부여했다. 그렇게 리허설 없이 5시간짜리 시트콤을 찍기로 했다.



고상하신 사모는 휴가를 맞아 첫 기차를 타고 발리로 떠나셨다. 두 냥이들의 간택으로 고용된 나는 10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당시의 꾸리의 압박 면접을 생각하면 과연 잘한 일인가 싶다.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미 아이의 몸무게는 6킬로를 찍었고 저 뱃살 없이는 이제 살아갈 수 없으니까. 일당 만원에 숙식이 제공되는 일이다. 4대 보험 없고 주휴수당 모르고 퇴직금도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24시간 냥이들의 삼엄한 감시 하에 지내야 한다. 그나마 밥을 먹을 때나 휴식을 취할 때 짬짬이 그들과 가상 세계 속 휴양지를 다녀올 수 있다.



한여름의 망상이 끝나갈 때쯤 세탁기가 빨래 다 되었다고 나를 불렀다. 작업을 하다 말고 신속히 다용도실로가 두더지처럼 빨래를 꺼냈다. 순간 힘을 너무 준 탓일까, 세탁망 지퍼가 고장 나 버렸다. 이 빠진 지퍼를 다시 끼우려 끙끙대다 땀을 한 바가지 쏟았다. 룽지가 와서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엄연히 내 일이라고, 마음만 받겠다고 사양했다. 이래서 사내 연애?는 질색이다.



임시방편으로 냉동실에 얼려놓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베란다로 나갔다. 야성미 넘치는 제철소 작업자 모드로 빨래를 널다가 이번에는 건조대가 망가뜨리고 말았다. 신이 이따위로 나를 농락? 하실 줄은 몰랐다며 흩어진 팬티들을 주워 모았다. 극내향인의 성격에도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건만 하루 할당된 삽질은 에누리 없이 부가되었다. 신도 본업이 충실한 타입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 이리 성실하니 저리 성공? 했을까 싶기도 했다.



이번엔 줄 나간 건조대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10년 전 결혼할 때 본가에서 데려온 녀석인데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낸 막역한 사이였다. 한쪽 줄을 끼우면 한쪽이 빠지는 무한 루프 속을 헤매며 냥이들에게 sos 쳤다. 거실 바닥에 누워 구경하던 꾸리가 베란다에 문지방에 결계가 걸려있어 넘어오지 못한다고 헛소리를 했다. 이번에도 심폐소생술 같은 펀치로 건조대를 고쳤다. 80년대 강장제 광고처럼 목에 두른 수건을 풀어 땀을 닦았다. 그렇게 성큼성큼 주방으로 돌아와 매실차에 얼음을 한가득 넣어 마시곤 북극곰처럼 표호를 했던 거 같다.

“끄-어-억 “



- 카사노바 백수 도련님 역에 정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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