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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29. 2024

내향인의 에너지 쿠폰 D + 46

20240729 N차 폭염

일러스트 : 냥찐빵 나와쑴니다. by 최집사



 드디어 에어컨을 고쳤다. 덩달아 이 육신도 냉매의 은총을 받았다. 그렇게 에어콘의 노예가 되었다. 진지하고 정중하게 충성을 맹세했고, 거짓만 조금 보태어 혈서라도 쓸 의향이 있었다. 굳이 그걸 원하는 거 같진 않는 거 같아 콘이라는 사랑스런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 집에 온 지 10년이나 되었다. 종종 다정하게 불러줘야겠다.



오매불망 찾던 리모콘은 콘이의 허리춤에서 발견되었다. 반려인과 나, 분명 둘 중 하나가 그곳에 두었을 텐데, 둘이 짠 듯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스마트폰 과다 사용이 원인일까… 아니면 냥이들과 지내다 보니 그들 뇌로 동기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냥이들이 불행을 모르는 이유는 오래 기억하지 못해서라고 하던데… 그럼 우린 행복할 일만 남은 걸까.



 방학을 맞아 엄마와 언니, 조카들이 집에 다녀갔다. 간만에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약간의 기 빨림을 느꼈다. 냥이들은 한껏 예민해져 숨어있었고, 아이들은 그런 냥이들에게 넘치도록 애정을 표현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내내 되려 내가 미안함을 느꼈다. 언니는 애들이 좋아서 그러는 건데 내가 유난스럽다고 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고양이라도 나에겐 가족이고, 그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만, 현실은 짜증과 버럭이 왕래하는 현실 자매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으로 한창 연약하고 사랑이 넘치는 시기의 조카들이 그 마음을 가장 안전한 대상에게 표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을 공격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을, 작고 힘없는 존재에게 끌리는 건 마흔이 넘은 나도 마찬가지니까. 아이들에게 좀 더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지 못한 거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성숙한 사랑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즐겁고 안심하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는 걸 가르치기엔 나의 내공도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몸이 아픈 뒤로 극내향인의 반열에 올랐음을 실감한다. 나를 포함한 3명 이상의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손님이 많은 가게에 가면 내적 불편함을 느낀다. 이런 내가 딱히 싫지는 않지만 몇몇의 타인은 반기지 않는 거 같다. 어느 책에서 내향인은 사람들에게 에너지는 주는 존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흔히 말하는 외향인이란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나 같은 경우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충전이 된다는 소리다.



그렇게 충전된 에너지가 있다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쿠폰처럼 나누어 주고 싶다. 이런 나를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 나아가 스스로의 결핍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나의 내공이 업그레이드되는 데도 큰 기여를 해줄 거라 믿는다. … 정말 그런 존재라면 거짓말 조금 보태 혈서라도 쓸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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