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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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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31. 2024

노소유 D + 48

20240731 태양 식빵, 바람 잼

일러스트 : 씨에스타 by 최집사



아침 일과 중 하나는 화장실을 정리하는 일이다. 냥이들 화장실을 물론 반려인이 씻고 나온 안방 화장실도 말끔히 청소한다. 수건을 바꾸고 샤워부스 안 물기를 닦고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선풍기도 틀어놓는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와 청소기와 돌돌이를 돌린다. 오늘 같은 날은 베란다 물청소도 하는 것이 좋다. 태양열로 뜨겁게 달궈진 타일에 물을 뿌리면 버터 같고 잼 같은 바람이 일어난다.



이쯤 되면 머리는 망나니가 되고 구레나룻과 인중은 오열을 하며 겨터파크에는 홍수가 난다. 갓 물질하고 나온 인어공주 아니, 해녀 같다. 냥이들은 이런 집사를 굳이 돕겠다고 졸졸 따라다닌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뱃속 먹이를 소화시키곤 막 청소를 마친 화장실로 사이좋게 입장한다. 원치 않던 바나나킥이 보너스로 입금된다.



이렇게 시작된 집안일의 무한 루프는 운동이자 수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상 체력을 위한 런지이자 스쿼트이다. 나의 코어와 대퇴사두를 굳게 신뢰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게 부지런히 가꾼 공간에서 손수 요리를 하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일상을 한결 윤택하게 해 준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래서 꼭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인간에게 자신 돌보고 다독이는 일은 셀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제 반려인이 발마사지기를 망가뜨렸다. 마사지를 하는 도중 일어나는 바람에 롤러가 씽크홀처럼 내려앉았다. ‘히포, 엘리펀트!’ 나도 모르게 당황한 반려인을 보며 떠오른 동물들을 외쳤다. 열 뻗치는 마음을 된소리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더 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약간의 순화 과정을 거쳤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작동이 되지 않아 as를 맡기기로 했다. 고치던지 버리던지 스스로 처리해라고 단호하고 고상하게 전달했지만, 다음날 내 손에는 박스 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이렇게 된 거 새 글감이 생긴 것에 반가워해야겠지…



 이 마사지 기계로 말할 거 같으면 작년 내 생일 선물로 반려인이 장만해 준 것이다. 항암 증상으로 한동안 발이 저려하는 나를 위해 구입해 준 것인데, 실제 소유권은 내게 있는 거 같지는 않다. 나보다 반려인 발과 궁합이 잘 맞았으니까. 매일밤마다 퇴근하고 돌아온 그가 옹달샘 같은 그것에 고라니처럼 발을 담그고 우아하게 하루치 피로를 풀어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렇게 우리는 내 거 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마사지기를 사이좋게 공유하며 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잃어버린 만큼 자유롭다는 걸 세상도 나도 쉽게 잊으려 해. 었던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앞으론 이 집에 있는 물건들을 소유가 아닌 애정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사지기가 돌아오면 이름을 붙여줄까 한다. 꾹꾹이나 토닥이가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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