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다스리는 요리
도서관에 왔다. 이번에도 오픈런으로 명당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급하게 대사를 치르느라 출발이 지연되었다. 그래도 운 좋게 제일 구석에 자리 잡았다. 에어컨 바람도 적당하고 조용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뼈 시린 찬바람과 남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경청할 수 있는 카페도 좋지만 아침 뉴스에서 프랜차이즈 커피값이 또 오른다고 했다. 주말에 훌륭한 로스터리를 방문하기 위해 그 마음은 아껴둬야겠다.
날씨가 너무 더워 그런가 냥이들도 사냥에 비협조적이다. 내키지 않으면 쉬면 될 텐데 방방곡곡 따라다니며 심심하다고 앙탈을 부린다. 창밖의 새들도 보이지 않고, 실외기실 둘기들도 휴가를 떠났다. 기어이 오늘도 육중한 집사가 새가 되는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서랍에서 딸랑이 볼을 꺼냈다. 밤사이 충전된 에너지를 모아 한 마리 익룡처럼 거실을 누볐다. 이쯤 되면 태클이 들어와야 하는데 오늘의 룽지는 구경만 하고 있다. 물개처럼 바닥에 드러 붙어 집사의 기술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기적일 정도로 자기애가 넘치는 생명체이다. 저 능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남 탓, 남신경 쓰지 않고 멋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보드라운 털과 귀여운 젤리가 필요하다.
글 속의 최집사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다. 적당히 도덕적이고 종종 이타적이며 자기 객관화도 할 줄 안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예민한 구석도 있고, 관계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글 속에선 생각으로 살고, 일상에선 마음으로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간극을 줄이고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꾸준히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결국 사랑이 필요하다. 나의 실수에 관대해져야 하고 다른 존재들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서를 겨우 넘긴 불같은 날씨에 불 없는 요리가 성황 중이다. 오이를 수북이 올린 콩국수나 차가운 된장을 넣은 비빔밥이 토라진 입맛을 달래어준다. 냉장고 속 장기 체류 중인 토마토를 꺼내 수프를 만들었다. 반려인의 본가 텃밭에서 데려온 아이들로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라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달큼한 햇양파도 한 주먹 넣고, 새콤한 유자청도 한 스푼 넣고, 껍질채 믹서에 넣고 돌돌돌 갈아 만들었다. 그렇게 통에 담아서 냉장고에 하루 숙성 시키니 풍미가 한결 깊어졌다. 기다리는 마음도 비법 중 하나라는 걸 배운다.
신선한 올리브유도 두르고 옥수수 술빵에 찍어 먹으니 여름 별미가 따로 없다. 찹찹한 수프가 불타는 여름의 마음을 다독여 주니 다시금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