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 1586번째 일러스트 : 드로잉 by 최집사
매일 1컷씩 1586일째 그림을 그려왔다. 그렇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해왔다곤 할 수 없다. 집안일이 밀렸거나,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칠 때… 삼보일배하는 마음으로 틈틈이 주저앉아 쉬어가며 그렸다. 새벽 토끼가 물만 먹는 마음으로... 그 시간만큼은 벌이 생각 않고 순진하게 살길 바랬다.
기억하고 싶은 일상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들을 편하고 소소하게 담았다. 40년간 내외한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이었고, 무탈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작업이었다. 개성 있는 그림체도 아니고 알록달록한 색도 쓰지 않았다. 긴 시간, 천천히 작고 단순함이 주는 귀여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값비싼 물감이 필요 없고, 눈앞에 그림들이 산더미처럼 쌓일 일이 없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패드와 팬슬만으로 색 없이 그린 그림들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용도실 문이 있는 주방의 식탁 한편이 나의 작업공간이다. 여기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 작업도 한다. 작업실에 대한 로망이 없진 않으나, 어쩐지 이곳이 익숙해져 버렸다. 원하는 걸 하는데 일상의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은 정말 소중한 걸 소홀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그림들은 만질 수도 없고 벽에 걸 수도 없다. 오로지 나의 시간으로 증명된다. 매일 한 걸음씩, 점을 찍는 마음으로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완성해 가고 있다. 울창한 숲 속, 이름 없는 나무처럼 주어진 하루를 천천히 조그맣게 그려가는 중이다. 그렇게 작은 것에 감사하며 다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