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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ug 11. 2024

 가(을)운트타운 D + 50

20240811 폭염스

일러스트 : 여름, 여행 by 최집사



지난밤, 3번의 고비가 있었다. 에어컨의 냉기론 갱년기의 열병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선풍기와 손풍기, 쌍풍기를 틀어놓고 접신한 무당처럼 누웠다 앉았다 쇼를 했다. 옆에 자던 반려인은 끝내 춥다며 거실로 나갔다. 눈치 제로, 애정결핍 룽지는 자꾸 배 위에 올라왔다. 자그마치 4.6킬로의 털뭉치였다. 활화산이 된 집사의 의중은 묻지도 않고 정성스럽게 춥춥이를 하며 골골송을 불렀다. 갓무친 겉절이처럼 땀과 털이 엉겨 붙었다. 입으론 욕을 했지만 한 손으론 자꾸 미끄러지는 육중한 엉덩이를 바쳐야 했다.



동네 카페에 왔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앞 테이블 커플은 부부싸움을 한다. 그 옆의 테이블 아저씨들도 뭐라 뭐라 화를 내는데 오디오가 겹쳐 알아들을 수 없다. 깡패 같은 폭염이 여럿 열을 올린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연예 시절 메시지처럼 재난문자가 온다. 누가 보내는지 모르지만 정이 들어버릴 거 같다. 휴가 막바지에 다다른 반려인의 텐션은 급락을 보였다. 사흘 연속 친구들 만나고 스크린 골프를 치러 다녔으니 지금쯤 지옥의 문 앞에 있을 것이다. 그가 무사히 도파민 금단현상을 이겨내길 바란다.



보름처럼 일주일을 살았다. 집안일도 줄이고, 작업도 줄이고, 커피도 줄이고, 스마트폰 보는 시간도 줄였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인 척 하루에 10시간 이상 규칙적인 수면을 취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폭염에 우울해지지 않으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일상을 보냈다.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설거지할 땐 설거지만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잊지 않고 실컷 읽었다. 물론 연체를 면하지 못했지만. 내 바람대로라면 지금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 현실은 불지옥에 끌려 온 죄인처럼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천천히 가을을 세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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