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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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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ug 21. 2024

장마스러운 하루 D + 57

20240821 고온다습

* 1589번째 드로잉 : 나무꾼 고씨 by 최집사



지난밤은 세 번의 고비가 있었다. 에어컨을 끄자니 덥고 돌리자니 춥고 이불을 덮으니 갑갑했다. 게임기처럼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밤을 지새웠다. 거실에 있던 냥이들이 집사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하나 둘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었다. 큰 냥은 기상송을 불러주고 작은 냥을 손가락과 발가락을 차례로 맛보곤 배 위에 올라와 춥춥이를 했다. 그 탓에 조금 늦잠을 잤다. 비틀비틀 방문을 여는데 냥이들이 또 잔소리를 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말을 가르친 거 같았다.



 반려인이 출근 전 대사를 치르는 사이 베란다에 있던 건조대를 거실로 들였다. 어제 삶아놓은 행주가 뽀송뽀송하게 마르지 않아 기분이 꿀꿀했지만, 군데군데 초를 켜 둠으로써 마음을 정화시켰다. 어제와 같이 감자와 오이, 당근샐러드, 삶은 계란, 방울토마토를 아침으로 먹었다. 찐 감자가 살짝 지겨워지려해서 두유를 조금 넣고 메쉬포테이토를 만들었다. 아마 다음은 수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 요리를 해두어야지 싶어 서둘러 된장찌개를 끓였다. 작은 냄비에 애호박과 버섯, 양파, 두부를 푸짐하게 때려 넣었다. 어제 싱크대 청소를 했던 터라 혹여 참사를 당할까 뚜껑도 덮지 못하고 무슨 한약 다리듯 노심초사 지켜보았다. 무사히 찌개를 끓이곤 뒤이어 찐 고구마 작업도 했다. 습식사우나에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온몸의 모공이 한없이 관대해졌다. 모닝 샤워는 불가피했다. 화장실로 가 구부정한 등으로 차가운 물줄기를 맞았다. 머릿속엔 온갖 욕상이 떠올랐다.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씻고 나오니 이번엔 룽지가 마중을 와있었다. 녀석은 주방에 가서 미숫가루 한 잔 하면서 풀자고 했다. 차가운 두유에 미숫가루와 꿀, 얼음을 넣고 사정없이 흔들다가 정신을 잃을 뻔했다. 현관에 드러누워있던 꾸리가 오버도 병이라고 혀를 찼다. 점심으론 활화산이 될 뻔 한 된장찌개와 열무를 넣어 비빔밥을 해 먹었다. 후식으로 냉동실에서 찹쌀떡 두 알도 야무지게 꺼내 먹었다. 좌측과 후방에 쌍풍기를 틀어 놓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해치우는데 또다시 땀으로 얼굴이 녹아내렸다. 온다던 종다리는 어찌 된 것일까. 태풍이 아니라 장마가 오는 걸까 의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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