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9 습하고 흐림
* 1660일째 드로잉 : 겨울맞이 곰집사
- 조용한 한 주를 맞이하고 있다.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아져 일부러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을 먹고 음쓰를 버리고 운동을 다녀와 소파에 앉아 주말에 빌려온 책을 읽었다. 라디오도 음악도 꺼두었다. 닉센, 게으름이 희망이 되는 시간을 읽다가 싱크대 위 콜드브루기에 커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 인셉션의 장면처럼 최면에 걸린 듯 잠이 들었다.
- 눈을 뜨니 허벅지에 하나, 옆구리에 하나 고양이 혹이 자라나 있었다. 지난주 외출이 잦았던 탓일까… 몸에도 마음에도 군살이 붙은 거 같더니, 냥이 사부들의 감시가 부쩍 삼엄해졌다. 낮잠으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허망함을 메우려 저녁 작업을 했다.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퇴근하고 돌아와 발마사지기를 하는 반려인과 그 옆에 널브러진 냥이들을 보니 새삼 다행이다는 마음이 들었다.
- 밤이 길어진 요즘은 아침 알람을 듣고도 한 번에 일어나기 힘들다. 일부러 10분 일찍 알람을 맞춰도 이상하게 일어나는 건 10분 더 늦다. 생각을 고쳐먹고 몸이라는 시계를 일상에 맞춰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의 알람보다 더 많은 진화를 거듭한 내 안의 시계를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 몸은 24시간이 아닌 365일, 4계절, 24 절기에 세팅되어 있을 것이다. 겨울이 오고 있으니 겨울의 시간을 준비하는 거겠지.
- 어제는 오랜만에 통밀 크래커에 찍어먹을 두부마요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만들려다가 드레싱이 탄생했다. 계량 귀차니즘병에 걸린 나로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샐러드 채소를 좀 사 올까 하다 아침에 병아리콩으로 심폐소생을 해보기로 했다. 불려 놓은 콩을 익혀 갈아 넣으니 어느 정도 농도가 맞춰졌고, 너무 셔서 외면하고 있던 귤도 조금 짜 넣었다. 구운 고구마에 쓱 발라 먹으니 제법 어울리는 맛이 났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병아리콩두부잼이 완성되었다. 의도치 않는 일로 두 가지의 레피시가 생긴 셈이다. 지금껏 내가 알던 사건, 사고, 어긋남, 실패들은 어쩌면 더 단단해지고, 더 유연해지고, 더 나아지기 위한 작은 버튼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의 할 일 : 바나나, 계란, 올리브유, 핸드크림 사 오기. 책 읽기
* 뽀너스
< 다 때가 있는 법_ 이윤엽 >
옆집 할아버지는 뭐든지 때가 있는 법 이래.
누가 물어봐도 다 때가 있는 법 이래.
무얼 물어봐도 다 때가 있는 법 이래.
할아버지 고구마 언제 캐요?'하면 다 때가 있는 법이여'하셔.
할아버지 배추 언제 심어요? 하면 다 때가 있는 법이여'하여.
벼는 언제 심어요? 하면 다 때가 있는 법이여 하셔.
할아버지 식사하셨어요?"하면 다 때가 있는 법이여' 하셔.
할아버지 화장실은 언제 가요?" 하면 다 때가 있는 법이여 하셔.
그래서
다 때가 있는게 뭐예요?" 하니
고구마는 고구마 깰 때가 있고 배추는 배추 심을 때가 있고 벼는 모를 낼 때가 있고 밥은 먹을 때가 있고 화장실은 갈 때가 있고 잠은 잘 때가 있고 일은 할 때가 있대.
다 때가 있는 법이래.
다 그때그때 하지 않으면
고구마는 썩고 배추는 싹이 나오지 않고 벼는 자라지 않고 밥 먹을 때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화장실을 못 가면 싸고 잠을 자지 않으면 피곤하고 일할 때 안 하면 먹고살 수가 없대.
근데 그걸 누가 모르냐고.
그래서
"있잖아요. 할아버지, 근데 그때는 어떻게 맡아요?" 하니 그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래.
어쩜 좋아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