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8 춥고 건조한
* 1710일째 드로잉 : 보통의 가족. 22
-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버렸다. 분명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정류장까지 왔는데 보란 듯이 쌩하고 떠나버렸다. 배차 간격이 자그마치 30분이나 되는 콧대 높은 녀석이었다. 넋 나간 표정으로 버스 엉덩이를 바라보는 순간 전력질주의 욕망이 샘솟았다. 아침에 먹은 오트 연료를 가동하여 10미터가량 부스터를 올렸다. 이내 급경사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밀았지만…
- 30분, 카페에 들어가기도 애매하고 도서관까진 무리가 있는 시간이었다. 동영상을 감상하고 있기엔 데이터가 허용하지 않았다. 다행히 약속 시간까진 여유가 있었다. 이리된 거 대놓고 멍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참새도 보고, 하늘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며 시간 부자가 된 거처럼 앉아 있었다.
- 룽지의 눈곱을 떼주다 상처가 났다. 처음엔 깨만 한 게 붙어있어 그루밍하면서 스스로 떼려니 했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사채 이자처럼 불어났다. 좁쌀만 해진 눈곱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물에 적신 티슈로 살살 불려 떼주려는데 불편한지 가만히 있질 않았다.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왕건이를 제거했지만 눈가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 녀석은 애옹애옹 울었다. 나도 따라서 애옹애옹 석고대죄를 했다.
- 반려인이 회사에서 라떼(고양이)와 제법 친해진 동영상을 보내왔다. 라떼는 8년 전 처음 연을 맺은 쪽자의 5남매 중 막내딸로 가장 작고 약한 아이였다. 그토록 정을 안 주더니 이제야 곁을 주는 녀석의 모습이 신기했다. 이게 다 캔의 위력이라고 철통 같은 보안을 뚫은 것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백 통 넘게 캔을 사다 받친 보람이 있었다. 근데… 여기서 말입니다. 라떼는 캔에 넘어간 것일까요? 반려인의 마음에 감동한 것일까요? 어찌 되었든 이제 세상에서 그가 제일 안전하다고 느끼게 된 거 같다.
* 오늘의 할 일 : 만만한 미역국 & 김치찌개 끓이기. 꾸룽지들이 숨겨놓은 머리핀이랑 장난감 수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