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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언니 Dec 17. 2022

노재팬 당시 일본 유학생이 겪었던 일화

이것이 바로 마녀사냥이구나

노재팬(NO JAPAN) 모두 기억하실 거다.


노재팬(NO JAPAN)이란?
2019년에 일어난 일본 상품 불매운동


당시에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는데, 나에게 노재팬은 사람들이 얼마나 지독해질 수 있으며 쓸데없는 오지랖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보고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꽤나 오랜 시간 운영해왔는데, 주된 주제는 '일본 생활' '일본 여행'이었다. 그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일본 여행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당시 많은 한국인 분들이 일본 여행을 오셨는데, 내가 깨달은 건 다들 똑같은 맛집, 똑같은 장소만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나름대로 그곳에 몇 년 간 거주한 사람으로서 '거기 말고 더 맛있는 곳 많은데...' '거기 말고 여기도 예쁜데....' 이왕 돈 내고 해외여행 오시는 거 색다르고 좋은 기억을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에 일본 여행 관련 블로그를 운영했다. 덕분에 좋은 여행 할 수 있었다는 댓글, 그 하나에 행복해하던 블로거였다.


하지만 미국으로 1년 간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블로그와 멀어지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블로그 알림이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벙벙한 상태로 무심코 알림을 클릭했다.


나라 팔아먹은 년. 너는 한국 올 생각 오지 말고 평생 일본에 살아라. (순화 버전)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상황 파악이 안 됐다. 이런 댓글이 왜 내 블로그에 달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충격에 떨리는 손으로 다른 댓글도 확인해보았다. 역시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이었다. 실시간으로 욕으로 도배되는 내 블로그를 지켜보며 지금 당장 무슨 인터넷 세상에서 일어나는 건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원인 파악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 SNS 모든 곳에 노재팬(NO JAPAN)이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고, 자칭 애국자이자 깨어있는 분들께서 일본 여행 등의 키워드를 통해서 내 블로그를 찾았고, 내 블로그 링크를 본인들의 커뮤니티에 공유해 집중 공격을 실시한 것이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휘몰아치는 댓글에 무서워 욕이 달린 코멘트가 올라오는 족족 삭제를 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삭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삭제하는 것은 포기하고 댓글창을 막아버렸다. 그런데도 블로그 어플에서 알림은 계속되었다.


너는 뭐가 일본이 그렇게 좋아서, 일본 여행 오라고 부추기냐? 너 같은 X들이 매국노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굳이 그 나라에서 가서 거주한다는 건 넌 쪽X리의 길을 선택했다는 거지...(중략)
일본 정부에서 돈 받고 이런 일본 여행 관련 글 올리는 거냐? 애X 뒤진 X


난 분명 댓글창 막았는데 무슨 일이지, 하고 확인해보니 댓글에 욕을 쓸 수 없으니 방명록까지 와서 신랄하게 욕을 달고 있었다. 일본 정부에서 뭐 지원받은 것도 없는데 일반인인 내가 왜 욕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방명록까지 닫았으나,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메모 기능까지 찾아와 끝까지 내 블로그에 욕을 달았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공인도 아니고 남의 관심으로 돈 버는 직업의 사람도 아니었고, 소소하게 여행 오시는 분들에게 맛집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블로그에서 2-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수백 개의 악플을 받게 되다니.


그때 처음으로 '마녀사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걸 깨달았고 왜 악플로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는 것인지 느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 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고, 일본에서 학위를 받는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를 '매국노' '쪽X리'라고 단정 짓고 나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저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대학생의 블로그에 나를 비롯한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욕한 그 당시의 분들께 묻고 싶다. 본인들의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시냐고. 본인들은 무조건적인 '선(善)'이고 는 일본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욕먹어도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본인들의 '옳은' 언행 때문에, 나는 그 이후 며칠간 꿈속에서도 그 댓글들을 마주하는 악몽을 꾸었다. 가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한국 비하하며 일본을 추앙하는 글을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일본 생활 글과 여행 코스 글에 저를 욕하면서 얼마나 본인들의 정의로움에 만족하며 본인들은 역시 애국자라며 자화자찬하셨을지.


아직까지도 노재팬은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나에겐 사람들의 '정의'라는 이름 하에 마녀사냥당했던 사건이고 앞으로도 노재팬이라는 글자만 봐도 그 트라우마가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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