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도 나도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본 적 없는 풍경을 밤잠 뒤척이며 갈망하는 당신에게

by rummbl


베니스의 골목은 좁고 높다. 구글맵이 알려준 대로 걷다 보면 막다른 길, 이끼가 잔뜩 낀 물속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만나기도 한다.


건물 번호만 제대로 외우고 있으면 구글맵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길도 찾아갈 수 있다. 골목골목을 전전하며 헤매는 것이 베니스의 정수.



모든 배들이 집으로 돌아와 정박하는 베니스의 밤. 찰박이는 수면처럼 마음이 벅차다.


여행자에게 도시는 매일 얼굴을 바꾼다. 모든 게 불친절하게 느껴지면 시계를 보고 내게 뭘 좀 먹인다. 그리고 기지에 맡긴다. 온종일 나에 대해 상상한다.


PICK YOUR SLICE 피짜 피크


전날 문 닫은 악기점 쇼윈도에서 보았던 피크가 잊혀지지 않아 무작정 건물 번호만(1235) 보고 길을 찾았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주려고 같은 피크 두 개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 몇 년 전 웹하드에 저장해 둔 사진이 베니스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베니스에 다녀온 뒤 나는 베니스를 그리워하지 않고 잠드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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