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말했다 "문신은 절대 하지 마라"

그때 내 나이 12살, 초딩이었다

by rummbl


아빠 팔엔 흉터가 있다. 물방울이 떨어져 종이가 운 것 같은 모양, 담배로 지져 스스로 문신을 지운 자국이었다. 기억하기론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가 말해줬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를 싫어하는 편이지만, 어린 내 눈에 아빠는 잘 생겼었고 흉터도 흉하게 안 보였다. 터프해 보였다.


아빠는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개인주의자다. 그런 사람이 만든 가정에서 자란 딸은... 나처럼 된다. 아빠가 내게 한 인생의 조언은 딱 두 개. 첫째, 문신을 하지 말 것. 둘째, 또래가 태워주는 오토바이를 타지 말 것.


아빠는 내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결정을할 때도, 서울로 상경할 때도, 대학원에 입학할 때도, 반복해 퇴사할 때도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경제적인 도움 요청에는 매번 '못 해준다'했다. 실제로 몇 번 목돈을 받았지만 대답이 그랬다.


그러나 나는 이십 대 후반 타투에 미쳤다. 수십 명의 타투이스트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고, 눈에 띄는 모든 사물과 무늬가 도안처럼 보였으며, 온몸에 타투 20개 있어 홀딱 벗어도 하나도 안 부끄럽다는 타투이스트 파트너(애인은 아니었다)도 있었다.


첫 타투를 새길 때 아빠의 조언이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아빠랑 다르다.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그림을 후회할 일이 없다, 생각했다. 지금은 몸 여기저기 타투 7개가 있다. 모두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그것들이 없는 내 몸을 상상하면 내가 아닌 것 같다.



첫 번째 타투는 파도였다. 사수와 불화 끝에 회사를 나왔고 다시 취업해 출근하기 며칠 전이었다.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사회에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나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제야 왜 무서운 아저씨들이 몸에 호랑이나 용을 새기는지 알게 되었다. 피부에 올리는 그림에 불어넣는 소망, 그림이 가진 힘을 믿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타투가 많은 이를 쉽게 경계하곤 한다. 그 타투들은 사실 타투이스트를 고심해 고르고, 도안을 논의해 완성하고, 몸에 새긴 뒤 그림이 잘 자리 잡을 때까지 수십 번 바셀린을 발라가며 관리한 성실한 증거다. 그건 어떤 부적을 지닌다는 느낌보다, 내가 그 물성을 가진 것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다.


타투이스트 파트너 말에 따르면 타투마니아는 둘로 나뉜다. 의미를 따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전적으로 의미를 따지는 쪽이다.


나는 물을 좋아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염증을 느끼는 내가 물고기라 생각하며 산다. 그냥 물에서 살아야 할 것이 뭍에 나와 사니 고생이다, 여기려고 그런다. 나는 팔에 돋아난 듯한 비늘 모양 타투를 새겼다.


태국을 여행하다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귀국할 때, 인생에 '나중'이란 없으며 '다음에 봐'라는 인사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달았다. 모든 만남은 마지막이며, 모든 순간이 시작이자 끝이었으니, 모든 발끝 닿는 곳이 내게 무덤이었다. 발목에 흰꽃을 새겼다. 나는 삶과 사람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발 딛는 매 순간 흰꽃을 헌화했다.


언젠가 퇴근 후 찾아간 타투샵에서 새 타투를 새기려 베드에 팔을 걷고 누웠다. 작업 준비를 하는 타투이스트를 기다리는 동안, 처음으로 아빠의 흉터가 아닌 원래 새기고자 했던, 자신과 다름없다 생각했던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몇십 년 만에. 왜 그동안 한 번도 그 흉터 아래 깔린 그림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한자로 '청룡'이라고 새겼다 했다. 그렇구나. 아빠는 자신을 푸른 용이라 여겼구나. 나는 나를 푸른 물이라고 생각해 파도를 새겼는데. 문득 삼촌이 떠올랐다. 삼촌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작업실에 '청담'이라는 이름을 걸었다. '푸른 불'이라는 뜻이었다.


이 파란 트라이앵글. 각자의 삶을 헤매고 다니던 우리 셋이 결국 어떤 지점에서 하나같이 자신을 '파랑'으로 정의했다는 게 재밌었다. 이래도 "문신은 절대 하지 마라"일까? 타투는 흉터로 그림을 남기는 정체화다.




나는 타투이스트 파트너의 도안 중 오래 마음에 들어 했던 부서진 우산 그림을 작업받기로 했다. 인스타 피드 스크롤을 몇 번 내려야 나오는 몇 년 지난 도안이었다.


작업받기 며칠 전 타투이스트 파트너는 수정한 도안을 보내주며 선물이라 했다. 나는 단호하게 원래 그림이 더 좋다고 했다. 수정된 도안은 선만 현재 스타일로 바꾼 정도였고 거의 변한 게 없었지만, 그래서 낡은 우산처럼 보였다. 나는 말했다. "부서져야 해. 낡는 게 아니라."


걔는 내 어깨에 전사를 찍으며 "이건 정말 받을만한 거야."라고 했다. "넌 처음부터 이게 좋다고 했어"라고도 했다.


맞다. 나는 처음부터 그 그림이 좋았다. 아무도 그 그림을 아직 가지지 않았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걔는 바늘로 내 어깨를 수십, 수백 번 긁어 그림을 그리며 자기가 이 그림을 진짜라고 생각하고 그렸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줬다고 했다. 사람들이 찾는 방식으로, 돈이 되는 방향으로 스타일을 바꾸고 몇 년이 지났다고. 걔는 "이제 와서 네가 이게 제일 좋다고 하니까.."라고 말했다. 거기까지만 말했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길을 걷다 가끔 부서진 검은 우산을 만나면 우주가 내게 보낸 신호라 생각한다. '이 길로 계속 걸어도 돼' 속삭이며 윙크하는 듯하다. 부서진 우산 타투의 의미를 아무에게도 말해준 적 없다. 실은 타투의 의미를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딱 한 번 목욕탕에서 누군가 내게 왜 이 그림을 새겼냐고 물은 적 있다. 물어놓고도 별 관심 없는 것 같길래 원래 부서진 거 좋아해요,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이제 아빠의 조언은 필요 없다. 애초에 아빠는 조언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고, 따라서 나는 조언을 구하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다. 단 한번 아빠가 내게 한 조언, "문신은 절대 하지 마라"도 내가 깨부쉈다. 원래 딸이란 평생 아버지의 조언을 부숴가며 살아야 하는데, 아빠가 조언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제와 다행이다.


빌헬름 게나치노라는 독일 작가는 소설 <이날을 위한 우산>에 이런 문장을 썼다.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 저희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제 내 어깨에 새겨진 타투의 의미를 물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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