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이별만 60번째

by rummbl


나는 사랑에 환장한 인간이다. 돈은 거절해도 사랑은 거절 못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돈이 많아 본 적은 없고 사랑은 넘치게 받아본 적 있어서인 것 같다.


서른다섯, 아일랜드행 워킹 홀리데이를 앞두고 학습지 선생님이 되었다. '돈을 모으되 가장 덜 괴로운 방법으로', 오직 그 이유 때문에 아이들과 하는 일을 택했다.


처음엔 일주일에 네댓 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일주일에 32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


32명이라니. 이럴 거면 애초에 교대에 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32명 영혼의 지분을 모으면 명예맘 정도는 될 테니, 맘카페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가 빵 봉지 타이로 매듭 지어준 반지. 어느 누가 이 프로포즈를 거절할 수 있을까?


똑같이 '바나나'라는 단어를 가르쳐도 어떤 아이에게는 '누나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우끼끼 원숭이가 먹는 것'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나는 부드~럽고 길쭉하고~노란색이야~누굴까?'였다. 나는 32명의 아이들을 위해 32개의 화법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32명의 아이들에게는 32명의 보호자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의외로 보호자와도 깊숙이 닿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일주일에 6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마음을 나눴다.


나는 32명의 아이들 중 30명을 사랑했고 2명은 최선을 다해 존중했다. 단 2명의 아이들만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32명의 보호자는 모두 나를 사랑해 주었다. 수업 중 밥을 차려주었고, 내가 아이에게 쓴 편지를 냉장고에 붙여두었고, 베트남에서 사 온 코코넛 커피가 맛있다 했더니 추울 땐 김이 나게 더울 땐 얼음을 잔뜩 넣어 내내 내주었다. 선생님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나는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랐다.




문제는 이제 시간이 다 됐다는 것이다. 60여 명과 사랑할 때, 그 사랑을 듬뿍 받고 팔딱 거리는 물고기처럼 퇴근할 때, 조금은 예상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 모든 사랑을 정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출국은 10월, 다음 주면 퇴사한다. 회사는 처음부터 내게 '학부모에게 퇴사 사실을 말하지 말라' 했다. 내가 무슨.. 이순신 장군인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퇴사를 비밀로 할 수는 없었다. 첫째로,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주고 싶지 않았다. 둘째로, 그건 어른에게도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 수업 이별했다. 어떤 아이들과는 인사 없이 헤어져야 했다. 회사의 사정이 있었고, 끝내는 모른 척 덮어준 나의 사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몰라도 나는 알았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걸. 나는 더 많이 칭찬하고, 더 많이 학습지에 하트를 그리고, 여태껏 조심스러워 삼가했지만 더는 못 견뎌 이마를 쓰다듬었다.


어떤 아이들과는 정식으로 작별했다. 나의 인사는 언제나 같았다. "선생님은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앞으로 네가 언제 어디에 있든 응원할 거야. 행복한 어린이가 되렴."


매번 '행복했고'에서 울음이 터졌다. 어머니들도 같이 울었다. 나는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았지만 말을 시작하면, 언어라는 것이 그랬다. 벽 끝에 삐죽 튀어나온 이파리를 잡아당겼더니 더 깊이 더 깊이 담쟁이덩굴이 끌려 나오며 벽이 우르르 무너지듯이, 내가 그랬다.


나는 잘 이별하고 싶었다. '끝은 슬프지만 공들여 해내면 뒤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 그걸 알았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울고 금방 그치고 다음 수업을 가고 또 울고 다음 수업을 갔다. 일주일을 그렇게 살고 나니 마음이 너덜너덜 녹초가 되었다.


아이들은 나를 잊을 것이고, 잊어야 한다. 내가 지나온 선생님들을 대부분 기억하지 않듯. 잘 자라 어딘가에서 나처럼 마음을 주고 잊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른인 나는 이 이별을 기억한다. 이 고된 과정은 실은 누구보다 나를 위한 거였다.




나는 종교도 없고 신도 믿지 않지만 이동 중 시간이 남으면 눈앞에 보이는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두 손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지친 내 곁에 있어주시고, 사랑을 끝맺을 때의 아픔이 사랑을 할 때의 기쁨보다 크지 않게 하시고", 기도 했다.


비 오는 날 홀린 듯 돌담을 따라 절에 들어가기도 했다. 마당의 황금 불상 앞에서, 그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합장했다.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이 당신인가요? 아무튼 저도 지금 아프니까..' 하며 고개를 드니 불상의 코끝에서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9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드디어 60여 번의 이별을 해냈다. 제대로 인사 못한 아이들 중엔 명절이라 오래 못 본다는 핑계로 포옹한 아이도 있다. 어떤 집에서는 인사 없이 문을 나서다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아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것 같았다. 생전 그러지 않던 아이가 "다음 주에 봐요!" 크게 인사해 돌아서는 내 등에 칼이 꽂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의 몸이 거리낌 없이 내게 기대올 때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해 정말 미안해'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 제목을 몇 번이나 떠올렸는지 모른다. 헤어질 결심. 그건 진짜 개짱센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는 "사랑은 의무의 죽음일세"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선생님은 사랑이 의무인 사람이다. 나는 성실히 어쩌면 너무 깊이 60여 명을 사랑했다.


콜라도 60번 흔들면 터진다. 일주일에 60번 이별한 인간은 어떨까? 나는 이 시기의 자기 연민에서 오래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우주인이 내 앞에 나타나 중력 없는 곳에서 지구로 돌아왔을 때 신체의 스트레스가 어떤지 설명한다 해도, 그 입을 막고 일주일에 60번 이별한 고통에 대해 말할 것 같다.


하물며 이별이 삼킨다고 끝인가? 그걸 녹여서 목구멍으로 넘겨야 한다. 한동안 애도는 계속될 것이다. 나는 힘껏 찌그러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내가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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