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천사가 우리에게 왔다.
네가 떠난 이야기를 길게 해 줄 거야.
아침이 되었고 우린 떠날 채비를 했다.
너의 영혼이 떠나면 남은 육체를 덮어줄 천과 대소변이 나오면 받을 페드 물수건 등등을 챙겨 놓은 가방을 강아지 프램에 걸어놓고,
막내아이는 어찌 데리고 가야 할까…
혼자서 내가 다 잘하고 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하나님은 내게 선물을 보내주셨단다.
엄마가 좋아하는 지인에게 문자가 왔어.
많이 힘들 텐데
병원에 갈 때 함께 가주겠다고…
거절할 수 없었어.
사실 누구라도 필요했는데
지인이 제안했을 때
마음이 울컥하고 너무 고마웠거든.
너는 내게 더없이 특별한 아이고
우리 막내아이는 나의 껌딱지라서
집에 혼자 놓고 오면 울고 불고 난리를 칠 것이 뻔해
걱정이 되던 차였거든
오전 11:40분
천사가 스며든 지인이 도착했단다.
엄마가 밥을 거의 안 먹고 지낸 지도 알고 있는 듯했고
엄마가 혼자 갈 것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도시락 가방을 들고 와
김치며 총각무며 샐러드를 꺼내
냉장고에 넣어주며 꼭 먹고 힘내라고 말해주더라.
엄마는 또 울컥했지.
엄만 겨우 경멸자차를 한잔을 대접했는데 말이야.
내가 널 돌보느라고 잠을 못 자서 좀비가 되었잖아
시장도 거의 못 봤거든.
내 곁을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신은 다 아시고 천사와 함께 좋아하는 지인을 보내 날 보듬어 주신 걸까?
차를 잠시 마시면서
대화를 좀 했어.
약속시간이 다됐어서 가야 했어.
우린 강아지 프램에 걷기 힘든 너를 태우고 막내아이는 하네스를 씌워 걸리면서
우리가 예약한 병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넌 마냥 밖을 구경하면서 좋아하더라…
산책 가는 것처럼
너의 옆모습에서 좋아하는 눈빛을 봤다.
환하게 웃고 있는 듯해서
가슴이 아팠어 많이
외롭기만 했던 긴긴 호주생활에
넌 오랫동안 변함없던 너무 특별한 가족이었으니까
연인이나 사람은 오고 가도
넌 내 곁에서 언제나 날 기다려주고
날 변함없이 사랑해 준 너니까
변함없이.
그런 너를 신에게 돌려보내는 날
신은 내 가족 모두가 너무 슬퍼하지 않고, 평온하도록 배려해 주신 것 같아
곧 떠날 너와
남을 우리 막내를 위해서
너를 보내고 마음이 텅 빌 나를 위해서
12:20분이 약속인데
오후 한 시가 돼도 의사 선생님은 우리를 부르지 않더라
그만큼 너를 더 안고 있는데
네가 지인을 보더니 환하게 웃는 모습을 봤어
지인이 우리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줬어.
내 생각에 넌
지인마음에 있는 천사를 본 듯했어.
네가 떠날 그 시각에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무언가 환한 천사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전에 볼 수 없었던 환하고 밝은 눈빛으로
웃고 있는 네가 엄마는 신기했어.
웃는 널 보고 있는 동안
크리스틴 선생님이 너의 이름을 불렀어.
엄만 마음이 쿵 내려앉았어.
진료실로 들어가면 넌 나와 함께 집에 갈 수 없을 테니까
사실 그게 제일 슬펐어.
선생님은 너의 메디칼 노트를 보시더니
많이 안 좋아졌고 보내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권하셨어. 엄마도 널 편하게 해 주자고 결정하고 갔는데 선생님이 동의를 해주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단다.
근육 강직이 심하게 오고 있는 이유는 심장비대라기보다는 아마도 쿠싱 증후군 합병증일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
넌 조용히 들으면서 내게 완전히 기대고 있었어.
아침도 먹지 않았고, 오줌도 응가도 미리 해두었던 네가 오늘 떠날 것을 알았던 거지…
아침부터 온전히 내게 기댄 넌
주사를 맞는 동안에도 아픈 티를 안 내고 내게 기대 고 있더구나.
그 순간이 더 슬펐단다.
떠나기 싫다는 티도 하나도 안 내고
너무 가만히만 있어서 엄마가 가슴이 아팠어.
넌 언제나 착하고 순하니까
갈 때도 그렇게 순하게 가준 거니?
내가 널 보내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어.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 크리스틴 선생님덕으로
넌 편안히 수면 마취제로 잠이 들었고
그리고, 그 초록색 주사를 맞고
넌 정말 떠났어.
1분도 안 지났는데…
선생님이 널 내려놓아 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했어
청진기로 체크를 하시고 커다란 동맥을 집어 보고는 네가 떠났다고 알려주셨단다.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왔어.
둘째가 떠난 것처럼
너도 그렇게 갔거든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을…
정말 인생이 이렇게 허망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15년을 버텨왔는데
나와 이곳에서 15년을 함께한 그렇게 소중하고 특별한 네가 1분 만에
이곳을 떠나다니…
막내가 너에게 인사하러 들어왔었어
막내도 네가 안 움직이는 것을 안 것 같아.
막내는 너를 보고 고개를 돌렸어
무서웠을 거야 네가 생기가 없어서
엄마는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면서 눈을 최대한 감겨주고 입도 최대한 닫아주고 싶었어.
자꾸 더 오래 있으면 병원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오래는 못 있겠더라
그리고 막내가 불안해해서 걱정도 됐어
막내와 엄마는 네가 있는 그 방을 떠났단다.
차갑게 식어가는 너를 혼자 놔두고서.
선생님께 내가 쓰던 여름 담요로 아이를 꼭 감싸달라는 부탁을 몇 번을 하고서.
후각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너에게
낯선 공간이 더 춥고 외롭지 않도록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잠들라고…
엄마는 그 방을 떠나는 게 너무 슬펐어.
그래도 뒤도 안 돌아보고 막내랑 집으로 왔어
집에 오는 동안
가슴에 바람이 숭숭 지나가더라
그 초록색주사를 맞은 건 넌데
내 가슴도 그때 같이 멈췄거든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인은 떠났고
문지방에 들어서는 순간
온통 널 위해 쓰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네가 남겨놓고 간 흔적들을 보고 펑펑 울었어. 아무도 없으니까 편안하게 엉엉 울 수 있었거든.
울면서 청소를 했어.
그냥 서둘러서 치우고 버렸어.
네가 계속 생각이 날까 봐
막내 아기 앞에서 네 생각이 나면 자꾸 울까 봐
조카 앞에서
하우스메이트 앞에서 울까 봐
보이는 대로 얼른얼른 치우고 닦았단다.
아침부터 네가 떠나기 전에 함께 산책하고 걷느라고 지친 막내는 정신없다가 이제야 잠이 들었구나.
이제는 저 아이와 내가 너 없이 살아가야 해
셋이었다 둘이 되고
언젠가 막내도 떠나면
엄마는 혼자가 되겠지?
그게 인생인 거겠지…
곧 저녁이 될 테니
넌 크리스틴 선생님이 이쁘게 다듬고 잘 싸서 오늘밤은 시원한 곳에 있게 되겠구나.
엄마가 데리고 있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너의 영혼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갔을까?
퇴근하고 돌아와
너의 부재를 느끼고 이제야 펑펑 우는 조카의 꿈에 한 번은 나타나주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가렴
아가야
동생은 내가 잘 볼게 걱정하지 마
엄마도 걱정하지 말고
날 안고 울던 이 엄마의 눈물을 핥아준 너의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사랑한다 우리 아가
네가 좋아하는 바람이 되어
편안하게 날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