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가족과 보낸다는 의미는
설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본 지 몇 년이 지났다.
지난 4년 동안 아픈 아이들과 지냈다 보니 이런 명절이 오랜만이었다.
내가 다니러 온 어머니댁에
동생네 가족이 왔다.
아침 일찍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녹두전과 여러 전을 부쳤고
어머니는 잡채, 갈비찜을 만드시고, 나물을 무치시고, 떡국을 끓이셨고,
난 만두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만두 사진이 없네 ㅎㅎ
맛있는 녹두전
고기잔부터 호박전 버섯 전까지
엄마만 혼자 지내시는 집에 가족이 다 와버려서
작은 상이 꽉 차버렸다. 내가 만든 커다란 만두가 오른쪽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나물 무침, 전, 갈비찜, 잡채, 만두 그리고 떡국을 먹었다.
이 정도면 집밥으로는 최상이 아니었을까…
설거지를 하루종일 했지만 명절이 이런 거구나
따스했다고 말해야겠다.
혼자 너무 오래 산 나로선 아주 조금은 어색한…
명절이었지만 말이다.
저녁 후 동생의 아이와 산책을 나왔다.
동생의 강아지들을 보면서 내 머릿속은 내 아이들과 걷던 추억이 오버랩이 돼버려서 슬픈 맘이 들기도 했지만
가족은 집으로 돌아갔고,
난 눈 온 아파트 밖을 배경으로 하고 열심히 티브이를 봤다. 티브이를 보면서 멍하니 있으면 슬픔이 달아나니까…
밥 잘 사주는 이쁜 누나를 가만히 보면서
아 나 서울에 있구나…
나도 연애를 해볼 테야 다짐도 하면서…
봐도 봐도 이쁜 드라마를 또 본다.
서울이 내겐 고향이고
사랑이 가득했던 곳이고
사랑 때문에 떠나기도 했던 곳
그리고 자식의 도리를 하러 돌아온 도시…
지금 난
너무 오래전에 서울을 떠나 옛 고향이 되었고,
가득했던 사랑은 텅 비었고,
아픈 사랑은 치유가 되어 비워졌지만
경험으로 난 더 단단해졌다.
자식의 도리를 하러 온 난 든든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잃은 슬픔은 잠시 주머니에 넣어둔 채
서울에 온 열흘동안 어머니와 함께 했다.
어머니의 파자마와
동생이 사준 김장조끼를 입고
티브이를 보다가 어제 해둔 녹두전과 동그랑 땡을 하나씩 먹고, 선물 받은 사과를 까먹으면서 공휴일을 지나고 있다.
20-30대는 외출하기에 정신이 없던 철없던 난데
나이가 들었나 보다.
방콕이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다.
조용히 거실에 앉아 같이 멍하게 티브이를 같이 보는 침묵이 따스하다.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러려고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