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30분
한국 영화 다섯 편을 보고 있으면
시드니에서 인천에 도착한다.
10시간 30분.
도착시간 오후 6:57분
전화 데이터를 사고
서울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이번 서울행은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
1. 오래전에 헤어진 전 남자 친구를 만나 보는 것
마음의 정리가 안 돼있었으니까…
2.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는 것
선배의 남편 후배라고 했다.
3. 어머니 방문
2월에 감기에 걸리신 후에 계속 아프셔서 확인차, 그리고 돌봐드리러
도착하자마자
3번을 매일 열심히 실행을 하고 있다.
집 치우고 밥 해드리고
빨래를 해드리고
모시고 외출을 하고
어머니의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쉬아를 누이고.
토요일 오후
2번을 실행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은 돌싱남을 만났다.
다 큰 아들 둘과 같이 사는 돌싱 12년 차, 유머러스한 분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따스한 물도 한잔 더 했다.
좋은 아버지였고, 성실했다.
주식 이야기가 나왔는데, 거기서 그분의 고집을 알게 되었고, 나와는 다른 경제관념이 있는 걸 알게 됐다.
저녁을 함께 하자 하셨다.
나는 야채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거의 비건이다)
그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해산물집으로 안내했고, 해산물 모둠을 시켰다.
다행히 조금의 오징어 튀김이 나와서 그것으로 간단히 저녁을 했고 술은 받아놓고 짠만했다.( 난 술 알레르기가 심하게 있다. 이게 불행이지만 이게 나인걸).
그분과 나의 식성은 아주 많이 달랐다.
해산물을 좋아하고, 육식을 좋아하며 야채과일은 잘 먹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먹어보지 못한 해삼물들을 몇 번 권하셨다.
모둠회와 술을 마시면서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있으면서 생각의 차이는 더 많이 다르구나 느꼈다.
일요일.
1을 실행했다.
전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가 먼저 내게 연락을 했다.
내가 서울에 왔는지 알았나 보다.
핑계는 그의 후배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우리는 약속장소 근처 전철역 8번 출구 위에서 만났다.
그 후배도 그곳에서 함께 만났다.
후배는 친근했고 전 남자 친구는 어색했다.
상반적이다. 감정이 없는 후배는 편했고 감정이 많았던 그분은 설레기보다는 궁금하고 조금은 어색했다.
우리 모두는 와인바로 갔다.
난 술을 한잔도 못 먹는다.
약속장소는 와인바.
연애할 땐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갔지만
지금은 와인바가 기꺼이가 되지 못했다.
콩까풀이 없는 탓이다.
내가 묻고 싶은 안부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빈허공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는 척하다가 온 듯하다.
우리는 헤어진 지가 햇수로 6년이다.
그 기간의 거리감을 한치도 줄이지 못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한 시간이 지나도
1미터 남짓의 거리감을 느끼면서 그대로 앉아 있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풀지 못한 수학문제를 놓고 고민하듯이 찜찜했다.
하자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1번과 2번을 실행하고 나서
월요일인 오늘
한 개의 문자와
한 개의 톡을 보냈다.
전 남자 친구는
과거의 관계이다.
지나간 과거는 돌아가지 않는 거라고 결정했다.
난 과거를 지나 이미 현재에 와 있으니까
다 내려놓고 현재의 길을 계속 가기로.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톡을 보냈다.
소개를 받은 분은
그다음 날 전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내가 이 사람과 나누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공유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지
나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아니라는 답을 얻었다.
정중히 예의를 갖추어 문자를 보냈다.
만남이 감사했다는 인사와 아무래도 인연이 되기엔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예의를 갖추었다.
나는 이기적이다.
서울에 있는 분과 만나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은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오고픈 속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이고
나와 비슷한 음식을 먹고
나와 비슷한 것을 듣고 보고 사는 사람을…
다 비웠다.
이번 방문엔 그렇게 혼자인 마음으로
돌아갈 듯싶다.
50대의 사랑은
편안하고 배려있고 이해하는 사랑이면 좋겠다.
머나먼 사랑의 거리를
영회 다섯 편의 스토리보다 더 깊게 채울 수 있도록
사랑도 노력인 걸.
사랑을 하겠다는 결심과 노력이
또 한 번의 아름다움을 창조해내지 않을까…
나는 자신이 있다.
노력해 낼 자신이!
내 사람이여 오너라! 내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