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의 단상
일요일
쉬는 날이다.
22년 만에 헌 직장을 버리고 작고 귀여운 새직장으로 옮겨서 12시간씩 일하고 적응하느라, 집에 오면 공기 쭉 빠진 광고 풍선 같아진다.
몸은 힘든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
이번 주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주말에 쉰다.
엄청 좋다. 캬아~~
해가 쨍하도록 잠을 자고 일어나서
묵은 과일과 싱싱한 과일을 섞어 아점으로 비타민을 과 영양분을 채워주고
어제 제대로 치우지 못했던 기구들을 설거지해서 어퍼 놓고 ( 부엌의 시계는 아직도 자기 혼자 썸머 타임을 달리고 있다. 난 한 시간 느리게, 시계는 미래에 ㅎ)
음식 자국이 묻은 내 애정 하는 비전 냄비들을 매직 블록으로 닦아서 다시 잘 헹구어 말리고
(난 투명하게 내가 먹는 음식이 보이는 게 좋다.
유리 용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보글보글 물이 끓는 유리 냄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또, 애정 하는 열심히 진지하게 보고 있는 나의 해방일지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 7편이 나왔다.
드라마의 배우들은 소금 같고 배우들의 미소들이 적당한 간장 맛처럼 기분 좋게도 하지만,
정작, 내 귀에 들어오는 건 작가가 써 내려간 이 시대상을 알려주는 대사들이다. 7회엔 구 씨의 대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 같다. ( 내일 자세 하게 써 넣겠다. 내 브런치에)
설거지를 하면서 대사를 집중해서 듣는다.
내 고향 서울에 살았다면 어쩜 사는 게 너무 바빠서 보지 않았을 드라마를
난 언젠가부터 이곳 시드니에 살면서
그리움에 대한 치료약을 넷플릭스에서 처방받아먹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보다 더 좋은 치유를 받으면서…
예전에 치열한 삶을 살아 낼 땐,
티비를 보면 시간낭비고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무시했다.
지금은 한국 드라마가 “공부고 치유”로 다가오고 있다.
멘토가 없는 내게
인생을 가르쳐주는 선배랄까?…
날이 이렇게 좋고 공기 좋은 시드니라도 살아보니,
그래도 서울만치는 못하다.
돌아가서 살고 싶다.
가서 일 안 하고 자유인으로 살고만 싶다.
서울에서 배울 것을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가면서…
항상 가보고 싶다는 곳도
가보고도 말이다.
난 왜 그렇게 서울에 자주 갔는데도 정신없기만 지내다 왔을까…
뭐가 소중한 건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날 좋은 이런 아름다운 시골 같은 데서
무기력에 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나와 싸워 가면서 살고 있으니
이곳이
암 잘 안걸릴 것 같은 환경이라 고맙지만
드럽게 외로움을 경험하게 해줘서 고맙지도 않다.
나의 무기력과는 상관없이,
해가 쨍쨍하니
우리 아이들은 신이 났다.
오늘은 빨래를 해서 탈탈 털어 널고
집안 청소를 좀 하고
또 내방을 정리하고
또 잔디도 깎아야 하는데 ㅠㅠ
이일이 제일 싫다.
잔디 깎는 일
아 몰라 안 해.
오늘 잔디는 깍지 않으련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를 위해 슈퍼를 가고
나를 위해서 음식 해서 먹고
내 집에 와 있는 스무 살 조카를 위해 가끔 외식을 해주고
요즘은,
만족해
만족해
나는 아직 잘 살아 있고
내 상상은 항상 현실이 되고 있으니까
아주 만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