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칸데오 호텔에서의 첫 아침을 맞는다. 이 호텔은 희안하게도 입구가 큰길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입구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재밌는 곳이다. 비즈니스 호텔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주말에는 가족단위 사람들도 꽤 많다. 저렴한 가격 대비 시설은 비교적 좋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호텔들은 객실당 요금책정이 아닌 성인 1인당 요금을 책정해 받는다. 이게 처음에 잘 적응이 안되서 예약할 때 많이 헷갈렸다. 초등이상 아이의 경우 성인1인으로 간주해 요금을 받기 때문에 예약에 신중해야됐다. 우리가 예약한 객실은 킹침대가 있는 객실이다. 보통 우리 부부와 아이 셋이 자는데 충분한 크기다. 그런데 본래 이 객실은 2인이 정원인 객실인데 11세 미만의 어린이는 부모와 함께 잘 수 있다는 규정이 적혀있어 예약한 곳이였다. 앞서 힐튼 호텔의 경우도 킹침대가 있는 방이였지만 원래 2인 기준 룸이였고 어린이는 추가금을 내고 엑스트라베드를 놓고 써야되는게 규정이였다 (이 경우 직원의 재량에 의해 그냥 넘어가 준 것이였다). 킹침대 하나에 우리 부부와 아이가 함께 자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킹 침대를 제외한 공간은 그다지 넓진 않았지만 우린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사실 방에선 잠만 자는게 주목적이므로 자는데 불편함만 없음 된다. 책상도 있어서 여자들이 화장대로 쓰기도 좋다. 이만한 가격이면 충분하다.
아침 조식을 먹기 위해 내려간다. 호텔을 예약함에 있어서 가급적 조식은 포함시켜려고 노력한다. 물론 근처에서 사먹는 것이 더 저렴할 수는 있으나 느즈막히 일어나 여유있게 아침을 먹는 것 역시 여행에서 해볼 수 있는 즐거움중 하나이므로 가급적 포함시켜려고 한다. 오늘은 후쿠오카 유명 관광지를 한번에 여행할 수 있는 일일투어를 신청해놓은터라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9시 까지 하카타역으로 가야되므로 일찌감치 일어나 조식당으로 향한다.
조식당은 9층 카운터 옆 작은 통로를 지나 있다. 통로에는 소파들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고 직원이 조식쿠폰을 확인한 뒤 입장시켜준다. 역시나 일본 특유의 친절함이 폭발한다. 게다가 잘생긴 젊은 청년들이 맞아주네. 멋지군. 조식당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호텔의 규모에 비하면 충분한 크기의 공간이였다. 우측에는 부페식으로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다. 왼쪽으로 ㄱ자로된 통유리로 뷰가 보이는데 호텔이 옆건물과 붙어있어서 건물 벽이 보이고 다른 한쪽은 거리풍경이 보였다. 빌딩 사이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텐진은 주로 큰 빌딩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특이할만한 풍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른 아침에 높은 빌딩 창으로 보는 뷰는 기분까지 탁 트일정도로 좋았다. 식사를 하면서 먼발치 풍경들을 반찬삼아 한번씩 바라보는 것도 기분좋은 경험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런 여유, 여행이 아니면 잘 느껴볼 수 없다.
메뉴들을 둘러본다. 대개 호텔 부페들이 그렇듯 메뉴들이 비슷하다. 소세지도 힐튼호텔에서 봤던 것과 같다. 편의점에 있는 에센뽀득? 약간 그런 느낌이다. 씹으면 톡! 하고 터지는 느낌과 함께 육즙이 터져나오는 소세지다. 난 소세지를 참 좋아한다. 어라. 낫또가 또 있네. 반사적으로 집어든다. 원래 내가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 끈적이는게 좀 싫긴하지만 뭐 몸에 좋으니까. 계란말이도 있다. 와 정말 샛노란 색깔에 구김없이 단단하게 뭉쳐진 계란말이다. 맛은 약간 달달하다. 우리네 입맛과 다소 달라 이질감이 느껴지긴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흰 쌀밥과 같이 먹으니 나름대로 괜찮다. 일본 음식들은 밥을 기준으로 먹으면 맛있는 것 같다. 그밖에 빵과 간단한 과일, 셀러드와 쥬스들이 있다. 그리고 커피. 와. 커피 진심 맛있다. 호텔 조식에 나오는 커피는 웰케 맛있는 걸까. 약간 흐릿한 맛의 커피인데 부드럽고 정말 맛있다. 아침엔 역시 이런 커피가 참 좋다.
통유리로 지나가는 지하철의 움직임이 보인다. 그리고 거리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일본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인다. 길거리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잠깐이지만 생각들이 스쳐간다. 삶에 대해,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사실 삶의 목적이 있을까 싶다. 그냥 어찌하다보니 난 태어나 있었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매일의 삶 가운데 내 뜻과 의지에 의한 삶 보다는 주어진 챗바퀴속에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인생이라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차지하는 영역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노력해서 행복한 영역들을 많이 채워나가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행복의 가치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열심으로 삶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주히 움직이는 차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속에 잠긴다. 그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 인생 뭐 특별한 거 있겠어. 주어진 삶에 열심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지. 다들 힘내라고. 간밧데!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들고 100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걸어서 약 5분 거리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 걷기에 멀지 않을까 싶었는데 실제 걸어보니 딱 좋은 거리다. 버스를 타고 다시 하카타 역으로 향한다. 버스에 내려 횡단보도에 서니 금새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찬다. 딩동뎅... 소리와 함께 신호가 바뀐다. 사람들이 일제히 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차들은 정지선에 정확하게 서 있다. 한번쯤은 흠을 잡아보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그런데 안보인다. 정말 정지선을 칼같이 잘지킨다. 정말 존경스런 국민성이다.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 참 부럽다.
길을 건너 하카타 역 광장을 지나 역사내로 진입한다. 여행사 일일투어 장소는 하카타역 반대편 광장쪽에 위치한다. 역을 뚫고 반대편 출구로 나가니 여러 여행사 직원들이 각자 팻말을 들고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 우리만 가는건 아니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여행사를 통해 우리와 비슷한 코스로 일일투어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잠시뒤 직원으로 보이는 두명이 xx박사 일일투어 신청하신분 여기로 오세요! 하고 외친다. 저긴가보다 하고 달려간다. 예약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 마친 상태라 명단에 이름만 확인하면 된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은 잘 안나는데 어른2에 아이1 해서 15만원 가량 됐던 것 같다. 개별적으로 코스를 돌려면 한번에 구경하기 힘들고 비용도 배나 소요되므로 이렇게 일일투어로 다니는 것도 효율적인 측면에서 꽤 꽨찮다. 잠시뒤 우리가 탈 버스가 도착하고 가이드가 나와 인사를 한다. 버스에 올라 다른 일행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마지막 인원까지 버스에 다 탑승을 마친후 가이드가 운전석에 앉아 서서히 버스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4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남자 분이신데 편안한 목소리로 인사에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준다. 본인은 가이드 일을 하고 있으며 후쿠오카에 일본인 아내분과 살고 계신다고 한다.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후쿠오카에 대한 이런저런 배경지식들을 하나씩 설명해주신다. 이런 배경지식들을 알면 여행이 한층 더 즐겁다. 패키지 여행이라 목적지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 없이 그냥 이끄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마음도 편했다. 이번에 느낀거지만, 모든 일정을 패키지로 하는건 그닥 맘에 들진 않지만 하루정도의 시간에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일패키지 같은 것은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활용에 있어서 훨씬 효율적이고 전문 가이드가 전해주는 이런저런 배경지식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다음에도 여행을 가게되면 일일투어를 이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일투어 여행의 첫 시작은 다자이후다. 일본에는 다양한 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다. 구글 지도를 보면 도심 곳곳에 크고작은 신사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후쿠오카에 있는 여러 신사들 중에서 가장 일본스런 느낌을 간직한 곳이 바로 다자이후 신사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중국 관광객들로 주차장이 가득차 있는데 우리가 도착할 때는 이상하게도 중국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다. 가이드도 이런 적이 거의 드문데 오늘 운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가이드를 따라 신사로 이동한다. 주차장에서 신사까지의 이동구간 양 옆으로 여러 가게들이 있다. 떡집에서부터 기념품가게, 먹거리집등 우리네 유명 관광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호객행위같은 것은 없는 편이다. 천천히 구경하며 신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응? 웬 스타벅스야? 여기 스타벅스가 있어. 진짜? 와 신기하네. 이 곳의 정확한 명칭은 /스타벅스 커피 다자이후 텐마구 오모테산도점/ 이라고 한다. 간혹 관광지의 컨셉에 맞게끔 지어진 스타벅스 매장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컨셉스토어중 하나라고 한다. 전통방식인 짜임식 목조로 지어졌다. 내부는 현대적 느낌으로 건물 외관과 크게 이질감 없는 디자인으로 이루어져있다. 어쩐지 사람들이 입구에서 사진을 찍더라니. 예전에 문경새재에서도 기와로 되어진 스타벅스가 있는 것을 봤는데 그런 비슷한 건가보다. 재밌네. 시간이 되면 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면서 매장내부를 더 구경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린 지금 일일패키지(?) 여행중이니까. 일행 놓칠새라 발걸음을 옮겨 신사내부로 향한다.
길 중간 사거리에 X자로 된 횡단보도가 보인다. 도로에 간간히 볼 수 있는 횡단보도다. 즉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각각 4개 있고 네 귀퉁이를 교차하는 X자 횡단보도가 또 있는 구조다. 그려진 X자 횡단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본다. 뭐 어차피 신호가 바뀌면 그냥 우르르 맘대로 건너긴하지만 깔끔한 도로 풍경과 그려진 하얀색의 횡단보도가 인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잠시뒤 커다란 기둥에 가로대가 걸쳐져 있는 모양을 가진 신사의 입구가 보인다. 오. 이거 사진으로 많이 봤던 그거네. 신사임을 나타내는 표식. 토리이(とりい鳥居) 라고 한다. 원래 제물로 바치는 새를 올려놓는 구조물이였다고 하는데 신을 모시는 장소임을 나타내기 위해 입구에 문처럼 세워놓는다고 한다. 그렇구나. 여튼 많이 보아왔던 구조물을 직접보니 신기하다.
신사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금색으로 된 황소 한마리가 보인다. 유명세를 탄 그 소다. 뿔을 만지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그 소다. 다자이후는 학문의 신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한다. 스기와라 미치자네 라는 사람이 주변의 시기와 질투로 관직에서 좌천되어 다자이후의 관리로 내려와 2년뒤에 죽었는데 그 시신을 옮기는 소가 바로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그래서 신이 내린 자리라 하여 그곳에 시신을 매장했는데 이후로 불운한 재앙들이 자주 일어나자 그를 시기했던 무리들이 그를 위해 사당을 세워 영혼을 달래줬다는 전설이 있다. 그때 소의 동상도 같이 세웠는데 그것이 명물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온 것이란다. 소의 뿔을 문지르면 머리가 좋아지고 관절을 문지르면 관절염이 좋아지고 배를 문지르면 아이를 낳는다고 한다. 오. 그렇구나. 재밌다. 순서를 기다렸다가 뿔을 한번씩 만저본다. 이야기가 진짜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다. 그냥 즐기면 된다. 아이와 같이 뿔을 문질문질 해본다. 어때. 머리가 좋아지는 느낌이 드니? 부모의 기대와 달리 아이는 관심없다는 듯 휭하니 앞으로 가버린다. ㅎㅎ 내가 무슨 대답을 기대한건지. 아내랑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동한다.
신사는 생각만큼 규모가 크진 않았다. 다 돌아보는데 30분에서 여유있게 걸어다니면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볼 수 있는 크기다. 소 뿔을 지나 왼쪽 다리로 향한다.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아서인지 고즈넉한 신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리 아래로 연못이 있고 물고기들이 뻐끔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큰 나무와 연못이 어우러진 풍경. 사실 이런 풍경은 우리네 관광지에서도 볼 수 있는 비슷한 풍경이긴 하다. 비슷하지만 일본 신사만의 건축물들로 인해 색다르게 보인다. 다리를 건너자 오른쪽에 약수물을 마시는 곳이 있다. 오. 약수가 있네. 한번 마셔볼까? 하고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 담으니 아내가 갑작스레 제지를 한다. 아냐. 이거 먹는거 아니래. 저기 봐. 하고는 위에 안내판을 가리킨다. 한글로 써진 문구에는 먹는게 아니라 손을 씻는 용도다 라고 친절히(?) 써 놓았다. 헐. 그렇구나. 근데 대부분 사람들이 바가지에 물을 떠서 마시고 있다. 이런 ㅎㅎ. 원래는 손씻는 물이라고 한다. 뭐 먹어도 상관은 없다는데 일단 안먹는걸로.
간단히 손을 씻은 후 안으로 좀 더 들어가본다. 넓은 공간 안쪽으로 사당이 있다. 건물의 모양은 우리네 절에서 봐왔던 모양과 다른 모습이다. 약간 중국스럽기도하지만 이런 디자인이 일본 특유의 건축물 디자인이겠다 싶다. 우리네 건축물은 다소 칼라풀한 색들이 있는 반면 이곳 사당의 색깔은 붉은 계통이 주류를 이룬다. 사진에서 봐왔던 일본승려가 제를 올리고 있고 그 옆에는 일본인 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같이 제를 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이니 아마 자녀의 학업성공을 위해 제를 올리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사진을 찍어도 딱히 제지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제를 올리는 분들이 있어서 다소 조심스러워진다. 옆쪽에는 소원을 적는 곳이 있다. 우리네 절간에 가면 기와에 소망들을 적어 전시하는 그런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작은 나무판에 소망을 담은 글로 추정되는 글들을 적어 걸어놓는거 같다. 여기까지 돌아보고나니 더이상 불 것은 없어서 다시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로 가는 길목에 타코야기나 닭꼬치 같은 것을 파는 노점들이 있다. 하나쯤 사먹어볼까 싶었는데 들고다니기 귀찮아서 그냥 넘어간다. 그래도 타코야끼는 한번 먹어볼껄 그랬나 싶다. 입구에서 가이드와 일행들을 만나 인원을 체크한 뒤 다시 버스로 향한다. 중간에 편의점이 있는데 가이드가 이 곳에서 커피를 사라고 이야길 한다. 우리네 편의점에 있는 1000원 커피다 그래서 커피를 사들고 버스에 오르자 1인당 하나씩 모찌떡을 준다. 따뜻하다. 안에 앙꼬가 들어가 있는 떡이다. 이걸 커피랑 먹으면 그렇게 맛있단다. 그래? 커피 한모금을 마시고 떡을 베어 문다. 오. 맛있네. 쌉쌀한 커피와 달짝한 모찌떡이 잘 어울린다. 알차네. 이런것도 챙겨주고. 패키지가 좋긴 좋구나. 아내랑 떡을 먹으며 빙긋이 웃는다. 버스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고 다음 코스인 벳푸 온천으로 달려간다.
-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