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특성상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죽음의 현장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가족들 곁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죽은지 일주일이 넘어 몸에 구더기가 들끓고
심지어 몇 달이 넘은 시체들은 앙상한 뼈만 남기도 한다.
신이 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창조했다면
왜 이런 차이를 만들어 놓셨을까.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렇게 초라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태어남은 의지로의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다르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의도적으로 불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러나 삶을 살아오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환경적 요인들이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만들어갈 뿐이다.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살아오면서 악하게 되어져갔을 뿐이다.
힘들게 살아온 살아온 삶이다.
그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은 중요하다.
삶에는 윤회가 없다.
천국은 우리가 있을 것이다 라고 믿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삶은 소중하다.
그 삶이 수명을 다해 끝을 맺어야된다면
그것은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야 한다.
그 누가 개인의 삶에 대해
종교적 잣대를 들이대며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교만하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것...
생각해볼 문제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한번 뿐인 삶을 마감할 때
과연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해볼 문제다.
그래서 오늘의 행복에 더 집중한다.
삶은 짧지만 또 길기도하다.
큰 욕심은 결국 불행으로 귀결된다.
오늘의 소소한 행복에 집중한다.
그것이 하나씩 모여 삶의 종착점에서 뒤돌아봤을때
그나마 후회가 덜 남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행복하자. 행복하도록 노력하자.
지극히 작은 삶의 모습들에 감사하자.
지금 마시고 있는 한잔의 커피와 빵에
기분좋은 행복을 느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자.
나는 행복하다.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행복들을
하나씩 낚아보자.
먼 훗날 죽음을 맞아하게 될 때
삶에 대한 미련이 덜했으면 좋겠다.
그래, 충분히 만족스런 삶이였다....
라고 웃으며 눈감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