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이야기
나에게는 늙은 개가 한마리 있다. 2007년부터 함께 해왔던 그는 우리 가족의 구성원으로 꽤 오랜 기간 함께 해오고 있다. 처음 그가 내 손에 들려, 우리 집으로 오던 날이 기억난다. 당시에 대학생의 신분이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면서 벌었던 돈으로 그를 데리고 왔다. 학생이었던 나에게는 큰 돈이었을지도, 그러나 그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준 행복을 생각하면 사실 산술적인 셈을 하는 것 조차 부끄러운 정도의 금액이었다.
2007년 8월 8일날 우리 집에 식구로 들어온 그에게 나는 '팔팔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내가 지은 그의 이름은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팔팔하게 살아가라는 나의 염원처럼, 그는 항상 자존감이 높고 활발하게 나와 우리 가족곁에서 함께 한다. 햇수로 치면 19년째, 나의 본가에서 살고 있는 그는 최근 들어 많이 늙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보다 잘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 그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그와 더불어 나이를 먹고 있는 나와 나의 부모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라는 사람이 군대를 가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누나가 결혼을 하고, 내가 졸업을 하고, 조카들이 태어나고 내가 취업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고, 그것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도 하고, 내가 결혼도 하고, 그리고 나는 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오롯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내가 만난 가장 큰 인연 중의 하나인 그를 지난 주에 만지고 왔다. 몸이 많이 가벼워진 그는 다리 근육이 잘 잡히지 않아 주물러줘야 제대로 걷는 듯 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않는(원래도 가리진 않았다. 교육을 시킨 적이 없으니) 그는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나에게는 아기와 같다.
나는 굉장히 잘난 사람이다. 잘하는 것도 많고, 실제로 내가 봐도 멋진 구석이 많다. 몇개 자랑을 하자면, 나는 무언가를 키우는 것에 소질이 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들, 그것이 생물이든 아니면 인간 관계이든, 조직이든 그것들은 잘 자라났다. 타고난 천성이 관심을 주고, 사랑을 주며, 그것이 잘 되도록 하는 과정을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기에 그런가보다. 이런 나의 잘난 점 덕분에 나의 개는 이토록 잘 살아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칭찬해본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잘못된 권위와 압제에는 성낼 수 있으며, 작고 사랑스런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낮추어 같이 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요즘은 매일 아침마다 기도한다. 나는 사실 종교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개가 건강하게 지내기를, 아프지 않기를 매일 기도하며 하루를 보낸다.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내가 아프고 싶다. 나는 다리를 절거나 허리가 굽어도 그보다 잘 살아갈 수 있을터인데, 나의 개가 그런 모습으로 지내는 걸 보는 요즘은 마음이 아려온다.
행복은 항상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참으로 운 좋게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왔으며,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나의 개가 있어서 행복하다. 당신도 행복한가? 그렇다면 좋겠다. 24년의 말미에 너무 많은 일들이 지나가서 나의 글쓰기가 꾸준함을 잃는 듯 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작년은 정말로 큰 일이 많았다. 소중한 기억들을 만들었고, 나의 삶의 모습도 변화를 주었던 해였다. 25년 역시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하나의 생각은, 행복은 바로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자리에서 행복할 것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의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바로 내 행복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