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수능 시험이 끝났다.

by 유월의햇살

나는 학생들 또는 성인들에게 수험 영어 등을 가르친다. 지식 소매상으로서 다양한 과목을 가르쳐 왔고, 지금은 수능 또는 내신과 관련한 내용을 사교육 시장에서 가르치고 있다. 내가 수능을 처음 쳤던 날은 2003년 11월 5일 정도였던것 같다.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04학번으로 대학을 입학했으니, 시간이 20여년이 지났다. 그때와 지금의 교육환경은 많이 다르다. 내가 수능을 치고 난 그 다음 해 2005년도에는 사회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군대에서는 전례 없는 총기사고로 인하여 , 아까운 젊음들이 세상을 떠났고 사후 약방문 격으로 군대 내에서의 내무부조리 등이 겉으로는 없어지는 듯 했으며, 그 해 수능에는 조직적인 수험장에서의 부정행위가 발생하여 현재의 수능 감독 시스템이 철저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사회는 미리 준비를 하면 안되는 병에 걸렸는지, 큰 일이 생기고 나서야 머리를 맞은듯 깨닫고 변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만명 정도가 응시했다고 하는 이 시험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대학 입시를 위해, 누군가에게는 이미 합격을 하였으나 그냥 재미로, 누군가에게는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과는 다른 전공 및 학교로의 변화를 주기 위해, 또 누군가는 그냥. 수능 시험을 처음 쳤던 날을 생각해보면, 나는 그 시험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하였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사실 나에게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아마도 이런 말을 하면, 시험은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니야?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것도 맞다. 적어도 나에게는, 단순히 결과 이상의 것을 주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 날의 시험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의 나를 바라보건대, 나는 많은 것을 배워왔다. 그러나, 그 배움은 사실 대학에서 배웠다기 보다는 대학 바깥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아마 그 바깥도 내가 속해있던 대학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던 환경이 많으니,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해서 일을 하였던 '떡볶이 가게'에서의 5년은 오롯이 성인이 된 내가 선택한 진로였다. 안정적인 공공기관을 나와서 택했던 것이 떡볶이 가게를 창업하는 것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져주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때의 가게는 흔적만 남아있고, 레시피도 가물가물해지는 것 같지만, 내게 있어서 힘차게 떡볶이를 만들었던 그 순간들은 지금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무엇이 되기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가수 이승환의 노랫말 가사처럼, 우리 젊은 친구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찾아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생각하며 살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한명인 젊은이로 영원히 남고 싶다. 시험을 친 사람, 함께 지켜봐준 가족, 그리고 시험을 치지는 않았으나 그 분위기를 함께 느꼈을 많은 이들에게 응원을 바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마트폰을 두고 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