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르쳐 주었던
삶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내 물음에는 네가 있었다. 12년 전, 부푼 꿈을 안고 인도에서 인턴을 할 때였다. 당시 내가 원하던 기업의 채용을 위하여 먼 나라인 인도에서 5개월여간의 인턴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 끝은 채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상실감이 컸고, 그것으로 인해 내 삶과 커리어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연이은 사건, 사고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힘들었던 기간들의 연속이었다.
많은 20대의 청춘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거기서 내 몸을 태워가며 달리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의 나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을 한다면, 나는 차라리 내 내면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려 노력했을 것 같다. 보이는 것,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나의 지위들에 너무 목매달고 살진 않았나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의 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어디 가지 않고, 집에서 부모님과 행복을 누리는 그 모습에서, 그리고 매일 똑같은 삶의 반복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 삶도 그러하게 될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내 삶의 중요한 고비에서 선택을 할 때 중요한 기준은 '나의 행복'이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살며, 나의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순간에 그들에게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면서 매일 나만의 루틴으로 운동을 할 수 있고, 책을 보는 삶이면 충분했다. 그게 다였다.
지금 나는 그러한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미 충분하게 그것들을 누리고 있다. 아마 20대의 내가 그러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깨닫지 못했을 앎이었을 것 같다.
지난주와 이번 주에는 집안의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외가 쪽, 친가 쪽 삼촌들이신데,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였다. 내일 발인을 할 외삼촌은 어렸을 적 추억이 많았던 어른이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투병하시는 도중에 작년 여름부터 올해까지 네 번 정도 찾아가 보았다. 나는 그래도, 가깝게 살고, 하는 일이 시간에서 자유로운 편이기에 시간을 쓰는 것이 용이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을 내가 운전하여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삶이 그런 것 같다. 생각보다 길지도 않고, 내가 가진 마음들을 표현하고 보답하기에도 짧고, 마땅치 않다. 그렇기에 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표현해야 한다. 나는 그래도 팔팔이에게는 언제나 일방적인 내 사랑 표현을 하였다. 예쁘다고 하고, 뽀뽀도 많이 하고, 안아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순간은 아쉬웠다. 못해준 것들만 남아서 그랬다. 내일은 외삼촌을 보내드리러 간다. 관을 운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래도 아쉬움 없도록 자주 찾아보려 했기에, 오빠를 잃은 엄마에게 조금은 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잘 가셔요, 저도 남은 삶 지내다 가겠습니다.
팔팔이의 이야기를 하다, 이틀 전 돌아가신 외삼촌에게도 인사를 하는 글이 되었다. 죽음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나 역시도 곧 그러할 것을 알기에 허투루 살 수 없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감사를 전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