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몸과 외모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행복과 가치 있는 삶이 외모의 부산물이 아님을 빨리 깨달을수록 더욱 담대해질 수 있다 -아리아나 허핑턴 (p41)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좋았고 내 목소리를 사람들이 듣는 게 좋았다. 방송부를 했고 덕분에 학예회 사회를 맡기도 했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데는 아빠의 영향이 컸다. 우리 집에는 매일 저녁 9시에 채널 전쟁이 일어나곤 했다. 아빠는 뉴스를 보고 싶어 했고 엄마는 드라마를 보고 싶어 했다. 아빠는 뉴스를 보기 위해,
“재연아 저기 봐 저기. 저 아나운서 언니 예쁘지? 우리 재연이도 커서 저렇게 예쁘고 똑똑해지면 아빠는 엄청 좋겠어.”
라며 시선을 끌었다.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아빠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잘하려고 했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똑똑하고, 목소리도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친구들에게 아나운서가 꿈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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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공부도 자기보다 월등히 잘하고 아빠가 언니인 나만을 유독 좋아하는 것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내가 칭찬을 받고 있을 때도 동생은 열심히 요리를 했고 요리 한 걸 아빠와 엄마에게 내밀었다. 아빠와 엄마는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나는 나의 온전한 사랑에 비집고 들어오는 동생이 싫었다. 아까도 말했듯 나는 비집고 들어오는 모든 걸 싫어한다. 냄새, 빛 그리고 동생.
나는 동생이 만든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아빠는 꼭 내 입에 먼저 넣어 줬다.
“재연아 동생이 만든거야. 어때? 맛있지? 동생한테 어서 잘했다고 말해줘”
실제로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빠가 시키는대로 맛있다고 했고 동생은 그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 아니라 아빠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같은 것이었고 아빠가 나에게 칭찬을 강요하지 않은 순간부터 나는 음식에 대해 어떤 평도 하지 않았다. 동생 역시 나에게 맛이 어떠냐고 묻지 않았고 나도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음식은 동생이 사랑받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나는 더욱 공부를 열심히 했고 동생은 요리를 더 열심히 했다. 아빠가 허무하게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그렇게 아빠와 엄마를 위해 공부하고 요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