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대학 원서를 접수할 때 친구들은 학과와 전공을 고민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 목표는 언제나처럼 아나운서였고, 아나운서가 되기 가장 좋은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면 되었다. 명문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는 나름 예쁘고, 지적이고, 공부도 잘하는 이미지였는데 비슷한 꿈을 가진 아이들이 모이니 나는 특색 없고 평범한 아나운서 지망생일 뿐 이었다. 실제로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언론을 복수전공 하고 여러 가지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아나운서라는 꿈에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는 항상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나는 더 이상 내 장래희망이 ‘아나운서’라고 당당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 않은 동기들도 있었지만,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동기들은 정말 예뻤다. 그들과 얘기를 조금만 해도 나는 완전한 열패감에 시달려야했다. 예쁘기만 한 게 아니었다. 모두들 나만큼이나 똑똑하고 성실했다. 아나운서가 되기에 나는 충분히 예쁘지도 않고 모든 게 다 평균 이하에 있는 지망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하면 내 외모를 좀 더 꼼꼼히 뜯어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또는 내 몸 전체를 훑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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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무언에 보내는 시선의 힘은 강력했다. 나는 시선에 움츠러들었지만 또한 극복해야 하는 길이었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외모를 위해 돈을 썼다. 쌍꺼풀 수술과 코 성형을 한 것이다. 엄마에게는 고등학교 때 과외 한 번 받지 않고 공부해서 대학 들어가는 거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고 졸랐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 것도 알고, 내가 성형을 하면 한동안은 집이 더욱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당당히 요구했다.
어쨌든 성형을 하고 꽤 큰 눈, 버선코는 만들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특히 압구정과 강남에서 성형을 하지 않고 성급하게 엄마의 아는 사람을 통해 싸게 해준다는 곳에서 했던 게 가장 후회됐다. 아무래도 트렌드에 맞게 해주는 건 서울인데 눈매교정 없이 쌍꺼풀과 앞트임만 해서 약간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나운서가 왜 예뻐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예뻐져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혔고 예뻐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시중에 파는 화장법, 미용 책들을 사다가 이것저것 화장 시도도 해보고 다이어트에도 열을 올렸다. 유행하는 다이어트가 있으면 꼭 해봤다. 덴마크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와 같은 고전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레몬 디톡스, 바나나식초 다이어트와 같은 새로운 다이어트도 열심히 했다. 물론 외모관리에 신경 쓴다고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순발력과 재능이 필요했기 때문에 학점관리, 영어 및 제 2외국어 공부 및 스피치 연습도 열심히 했다. 봉사활동도 하면서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임을 증명해보이고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