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나운서

성형을 또 결심하다

이날을 위해

by Sia

그 날도 나는 역시 한 소리를 들었다. 하관이 너무 발달했다는 것과 우리나라 평균보다 큰 가슴 사이즈 때문에 화면에 뚱뚱하게 나오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꾸준히 했는데 아직도 부해 보인다니 힘이 빠지긴 했지만 이것 역시 내 노력부족이었다. 가슴이 크면 팔뚝의 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카메라와 대중은 팔은 가늘고 가슴은 크기를 원했다. 그래서 보통은 가슴 크기를 포기하거나 그 상태에서 팔 지방흡입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팔이 그렇게 굵지 않았고 다만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키와 다소 짧은 목이 문제였다. 나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 최대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목을 길게 쭉 뺐는데도 예리한 감독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 원장선생님은 짧은 목이 긴 목에 비해 신뢰감을 주는 편이라고 했지만 정도껏 짧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더 열심히 굶었어야 했다. 40대의 나이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몸매를 선보이는 빅토리아 베컴은 ‘여자는 말라야 한다. 나는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죽을 만큼 운동한다.’고 했다. 나는 아침에 먹은 카페 라테를 후회했다. 배가 고파도 에비앙을 마셨어야 했는데 말이다.

*

집에 돌아왔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지만 공기 중 간간히 남아 있는 버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식탁에는 휘핑이 잔뜩 얹어진 레몬타르트와 견과류범벅이 된 쿠키가 있었다. 휘핑은 촉촉해보였고 상큼한 레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 냄새를 싫어하지만 레몬 냄새는 침을 고이게 한다. ‘견과류는 노화방지에도 좋다는데’, ‘냄새도 안날 터인데’와 같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하나를 집어 먹고 싶은 욕구가 손가락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끼도 먹지 않았다. 손가락이 가는 순간 비밀번호를 누르고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겠지.

나는 쿠키 하나를 집으려던 손가락을 거두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왔다. 동생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의 갖가지 냄새들이 코로 훅 들어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곤 동생에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냉장고 혼자 써? 물에 냄새 베잖아.”

동생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물을 꺼내 마시고 두유팩 하나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

책상에 앉아 두유를 마시며 카메라 감독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카메라 감독의 말이 그렇게까지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이미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지적 받았던 부분이라서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결심은 섰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수술을 해야 했다.

책장에 놓아 둔 통장 5개를 꺼냈다. 생활비로 쓰는 통장 하나와 청약통장, 학원비와 장학금이 들락날락하는 통장 하나 또 2개의 적금 통장이다. 적금 통장 중 하나가 이날을 위해 모아온 성형용 적금이었다. 나는 언젠가 이렇게 닥칠 순간을 위해 닥치는 대로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온 터였다. 처음에는 교정이면 될 줄 알았는데 턱뼈가 길고 턱이 약간 나온 입이라 교정만으로는 하관이 작아 보이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온 턱 때문에 입이 들어가면 주걱턱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턱을 잘라내는 하악수술이나 안면윤곽 해야 하관이 작아진다고 했다.

결심은 섰다. 수술을 해서 턱을 정돈할 것이고 다이어트를 더욱 강하게 해야 했다. 마침 1일 1식 열풍이 불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만나 결성된 스터디원들도 리포팅, 시사상식 공부와 함께 1일 1식 다이어트를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는 1일 1식이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고 위안했다. 아니, 위안이 아니라 그렇게 될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물론 운동은 하지 않았다. 소위 헬스트레이너라는 사람들은 여자들이 운동을 해도 남자들만큼 심한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나는 조금만 근력운동을 하면 허벅지와 종아리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옷발이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근육을 최대한 빼고 매끈한 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1일 1식을 하며 아침, 저녁으로 스트레칭과 요가를 했다. 1식 메뉴는 주로 커피와 바나나 또는 샐러드와 요거트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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