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나운서

친구와의 만남

치즈케이크와 친구

by Sia

마침 친구의 연락이 왔다. 대학에서는 그나마 가장 친한 친구지만 따로 만나서 밥 먹은 것은 손에 꼽는다. 소설을 쓰는 지민이라는 친구였다. 지민이 역시 바쁘진 않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스터디원이나 학원 사람들을 제외하고 연락하는 또래는 별로 없다. 인맥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는 나에게 친구를 만나는 것은 부담스럽다.

특히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매우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누군가와 만나 공간을 차지하고 소리를 낸다는 건 그 시간동안 공간을 차지할 돈을 지불해야함을 의미했다. 내 생각에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돈과 시간이 확보된 사람이다. 사소한 연락, 생일을 포함한 경조사에 건네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에도 돈이 드는데 나는 그 정도도 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나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도 버거웠다. 나도 언젠가 돈이나 생활이 안정된다면 친구가 지금보단 더 생기겠지.

어쨌든 이번에는 큰 수술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터라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지민이의 연락을 거절하지 않고 만나기로 했다. 아카데미가 있는 마포 근처의 카페였다. 친구는 생크림 잔뜩 올려 진 카페모카를 주문했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생크림이 잔뜩 올려진 카페모카를 보자 어제 본 레몬타르트가 생각났다. 그 레몬타르트 위의 휘핑만큼 촉촉해보이지는 않았다.

지민이는 케이크도 한 조각 먹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녀는 혼자라도 먹을 거였다며 카페모카에 치즈케이크를 하나 더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지민이를 찬찬히 뜯어 봤다. 홑꺼풀 눈을 가졌지만 큰 눈에 다갈색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코는 평범했는데 하관이 길어 약간 노안의 이미지를 주었다. 키도 크고 늘씬한데 발목과 손목이 굵어서 그런지 여성스러운 예쁜 선은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목소리는 그녀의 큰 키처럼 시원하다. 다만 말을 할 때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역대보다 약간 높게 말해서 오래 들으면 피로하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갑냐? 뚫어지게 보네.”

“두 말하면 잔소리. 반갑지. 넌 요새 뭐하고 지내?”

“보는 애들마다 뭐하고 지내는지는 왜 묻니? 별일 없이 살아.”

친구의 냉소적인 대답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뭘 하냐고 물을 때마다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봉사활동, 영어 학원, 과외들. 그럼에도 말끝에는 꼭 ‘잉여처럼 살아’를 덧붙이는 사람들과 달라서였다. 나 말고 남들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모두 다 열심히 살면 나는 그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을테니까.

내가 지민이의 모습을 보며 편안함을 느낀 것은, 포크로 치즈 케이크를 푹 떠서 입에 넣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여서이기도 했다. 스터디원들과 카페라도 가면 케이크나 디저트류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치즈케이크를 보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친구는 포크를 내밀며 먹으라는 눈짓을 했다. 혼자 먹을 거라고 말했으면서도 지민이는 포크를 두 개 가져왔던 것이다. 지민이의 세심함에 살짝 감동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나 다이어트 중이야.”

“이렇게 말랐는데 무슨 다이어트야. 사람이 다 먹고살자고 사는 건데.”

“그러게 말이야.”

“다이어트는 어떻게 하는 거야?”

“다이어트 안 해봤어? 요즘에도 다이어트 안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냥 너무 많이 먹었을 때 먹는 걸 줄여보긴 했는데, 세상에 워낙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이 많으니까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어.”

“그런 건 없어. 요즘은 1일 1식해. 건강에도 좋대. 1식이.”

“나도 그 다큐멘터리는 봤어. 1일 1식이 건강에 좋다니 믿기지 않는다. 언제는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더니. 그런 거 보면 인간이 사는 거 별 거 없지 않냐? 사실 밥을 규칙적으로 먹어야한다. 잠을 밤에 자야 한다. 이런 것도 다 사회 규범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

“응, 그런데 꼭 건강에 안 좋더라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살만 빠지면 되는 거라서.”

“야, 너 다이어트 안해도 충분히 예쁜데 누가 너보고 다이어트 하라는 거야?”

“아카데미 선생님이.”

나는 친구의 표정을 보고 얼른 덧붙여야 했다.

“다들 하는 거야. 아나운서는 보이는 직업이잖아. 예쁘면 예쁠수록 좋은 거지. 안하는 게 이상해”

“뭐라고?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구나.”

나는 기분이 약간 상했다.

“나도 미친 거 알아. 근데 어쩔 수 없잖아. 뭐라도 되려면. 하고 싶은 게 이런 걸 요구하는데 어떡해?”

발끈하는 모습에 친구가 약간 당황했고, 목소리가 누그러들었다.

“너보고 미쳤다는 건 아니었어. 그냥 너처럼 예쁜 애도 외모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게 이상해서. 기형적인 것 같아.”

“나조차도 예쁜 게 더 좋고 그런 사람들을 TV에서 보고 싶을 거야. 여자고 남자고 다들 다이어트는 해. 화면은 더 뚱뚱하게 나오니까.”

*

친구와는 찝찝함을 남기고 헤어졌다. 치즈케이크도 커피도 남긴 채였다. 순간적으로 흥분을 해서 그런지 그 날 밤부터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이어트를 해서 살이 빠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에 열이 나는 게 기쁘게 느껴졌다. 한동안 밤마다 고열이 났고 체중은 잘 줄어들고 있었다. 20대가 되고 나서 최저 몸무게에 도달했다. 살이 진작 이렇게 잘 빠졌다면 고생스러움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역시 다이어트는 한 번 할 때 제대로 확 빼야했다.

내일이면 수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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