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악수술을 하다
엄마는 모든 미용 수술에 반대했기 때문에 혼자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부탁해서 같이 가기는 정말 싫었다. 붓기는 세 달이면 알 사람만 알만큼 빠질 것이고 이미 한 수술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엄마도 뭐라고 못하겠지. 그리고 엄마 세대는 아직도 유교정신에 입각한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말하기 때문에 수술에 대해 과도하게 부정적이었다. 언론매체에서는 양악수술을 비롯해 많은 성형수술, 시술에 대한 위험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사실 개인의 문제로 놓고 보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보다 현실에 안주하느냐, 한 단계 올라서느냐의 문제다. 예뻤으면 바뀌었을 인생에 대해 얼마나 많이 생각했으며, 남보다 덜 예뻐서 받았던 서러움이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가. 수술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두려움만 증폭 시킬 뿐이었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양악수술 후기들을 보며 가장 내 얼굴에 잘 맞는 성형외과 병원을 찾았다.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서 견적도 내보고 믿을만한 의사를 만나 J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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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수술은 다른 수술과 다르게 약간의 절차가 필요했다. 수술을 받기 2주 전부터 50가지의 검사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검사를 하고 조금 귀찮은 절차들이 이어졌다. 검사를 받고 혹시나 몸에 이상이 있다며 수술이 안된다고 할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검사를 받고 며칠 뒤,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마치 대학이나 합격한 것처럼 기쁜 마음이었다. 며칠뒤면 정말 내가 예뻐지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두근대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수술 후 부작용, 죽은 사람, 수술이 잘못 된 사람의 후기들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런 불행이 나에게 일어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수도 있다고 해도 그런 가능성 때문에 지금처럼 살아갈 수는 없었다. 내 얼굴이면, 꿈을 이룰 수 없다는데 어떻게 수술을 안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보기엔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이 꿈을 위해 투자한 시간들, 앞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걱정이 들때마다 나를 다독였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겁내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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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가운을 입고 누군가가 나를 부르길 기다렸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잡지를 봤고 곧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소독약으로 입안을 헹궈냈다. 수술대 위에서는 목덜미까지 소독약으로 닦아내는 과정을 거쳤다. 차가웠던 감각, 수많은 초록 유니폼 가운데 홀로 발가벗고 있었다. 부끄러움의 감정이 내가 느낀 마지막 감정이었다. 마취약이 들어가고 의사는 숫자를 거꾸로 셀 것을 요구했다.
10, 9, 8, 7, 6......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주황색, 노란색 오로라가 사방에 있고 나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수술대가 움직이더니 바퀴없이 우주선처럼 검은 허공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