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나를 위해
홀로 수술대에 올랐고 혼자 깨어났다.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 주사를 맞기 전까지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하지만 곧 의식을 잃었고 일어나니 수술은 끝난 채였다. 나는 곧바로 눈물이 흘렀다. 극한의 고통 때문인지, 진짜 내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서인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후회의 마음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이게 지옥인지 삶인지 구분이 안됐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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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고 처음 쌍꺼풀 수술을 하느라 수술실로 들어가던 때가 불현 듯 생각났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엄마는 나를 붙잡아 세우고는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엄마 눈엔 이렇게 예쁜 딸인데.....”
나는 그런 엄마에게,
“어떤 모습이어도 엄마 딸인 건 변함없어. 걱정하지마, 엄마.” 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얼굴을 잃을까봐 걱정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결국 자신을 잃어버릴 나를 걱정했던 것임을 그 때는 몰랐다.
갑자기 떠오른 첫 수술대의 경험이 머릿속으로 지나가며 철없었던 나의 대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이를 더욱 악 물어야 한다. 이 정도 고통도 감내하지 못한 채 무얼 이루겠다는 건가. 다 내 선택이었고 어떤 때는 나의 모습을 철저히 버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렇게는 사랑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는 나만 좋다고 모든 게 해결 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나는 합리화 할 수 있는 구실들을 만들며 정신의 안정을 찾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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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은 가슴성형수술처럼 며칠을 병원에서 회복해야 했다. 나는 엄마나 친구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수술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므로 그 극한의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했다. 양악 최고의 부작용이 죽음이라던데 나는 수술을 무사히, 혼자 마쳤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었다.
양악수술을 한 것에 대해 남아있던 일말의 후회는 붕대를 푸는 순간 없어졌다. 입을 벌리지 못한 채 유동식을 입으로 흘려보내야 했고 씹을 수도 없었지만 붓기 사이로 보이는 달라진 얼굴의 윤곽이 나를 기쁘게 했다. 턱이 조금 사라졌을 뿐인데, 붓기도 덜 빠졌는데 이런 모습이라는 게 좋았다. 고된 아르바이트로 벌었던 돈들이 빠져나간 통장은 텅텅 비었지만 만족스러운 얼굴에 마음은 꽉 찼다. 어쩌면 내가 정말 ‘될 사람’이어서 이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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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정도가 지나고 붓기가 덜 빠진 상태로 스터디와 아카데미를 다시 나갔다. 집에서 붓기를 가라앉히는 한달 간 벌어지지 않는 입 사이로 미음을 흘려 넣었고, 아픔에 흘렸던 눈물도 많았지만 더 이상 쉴 수가 없었다. 오래 쉬면 발성과 발음이 흐트러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어차피 다들 성형을 하는 분위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스터디원들은 양악수술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스터디원들 역시 내가 아나운서를 하고 싶다면 사각턱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몇 명의 스터디원들은 더 예뻐진 나를 질투할 수도 있다. 그들의 눈빛에서 그런 반응이 보이는 듯 했고 나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뿌듯했다. 그들이 나를 부러워할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할 결심을 했던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엄마가 반대하셔서 홀로 수술을 마쳤다고 말하니 앞으로는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보호자 없이 잘못되면 마취도 안 깬 상태에서 어쩌려고 하냐는 것이었다. 순간 섬뜩했지만 그래도 잘 됐으니 지나간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 없었다. 앞으로 내가 이것보다 더 큰 수술을 할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