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나운서

변태의 과정

변화의 시작

by Sia

나는 얼굴이 더욱 예뻐졌다는 생각 때문인지 심리적으로 더 당당해졌다. 남의 시선을 예전보다는 덜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이든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붙었다. 자신감은 완전한 나에서 나온다는 확신, 그리고 내가 점점 완전해 질 것이라는 결심으로 불타올랐다. 난 그 심한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당당함에 한 몫을 했다. 부기는 점점 빠져갔고 유동식을 먹는 과정에서 살도 더 빠져갔다. 이전에도 사람들이 말랐다고 하는 몸이었는데도 끊임없이 체중이 줄어드는 게 신기했다. . 체중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이 왜 점점 예뻐지냐고 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너무 말라서, 뼈다귀같다는 말도 했지만 새겨듣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들은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하는 눈을 가졌을 뿐.


문제의 날은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스피치 연습을 한 날 벌어졌다. 그날따라 발성, 발음, 호흡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소리는 등 뒤까지 공기를 채워 넣는 복식호흡으로 소리를 끌어 내 공기 반, 소리 반으로 내야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호흡이 깊게 들어오지 않았고 발음도 엉망이었다. 귀에서는 '삐-'하는 이명이 들리고 머리는 구름이 찬 듯 멍했다. 배가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이 계속 되었다. 견뎌보려했지만 특정 사안에 대해 1분 동안 자유롭게 발언하는 1분 스피치도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같은 주제를 계속 반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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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시련이 올 때마다 동갑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를 생각했다. 피겨여왕이라고 불리는 김연아도 분명 나와 같은 시련을 감내했을 것이다. 트리플 악셀을 하다 빙판에서 쓰러질 때마다 차가운 얼음을 딛고 다시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훈련이 잘 안 되는 날이라고 쉬는 것은 프로답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울음도 웃음도 삼키고 기계처럼 훈련하는 것이 결국 김연아를 올림픽 금메달,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순간적인 힘들다, 짜증난다는 감정은 억누르고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김연아를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렸다. 연습을 하고 1분 스피치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김연아도 객관적으로 뛰어나게 예쁜 얼굴은 아니다. 작은 얼굴에 긴 팔과 다리를 가졌지만 눈두덩에 지방이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김연아가 빙판의 여신으로 불리며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다 그녀의 노력덕분이 아니겠는가. 사실 김연아가 빛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녀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와의 개인적인 경쟁을 넘어 한일관계의 부담감을 지고 연습했다고 에세이에 쓴 것처럼 나도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빠 없이 홀로 남겨진 엄마와 마냥 철부지 같은 동생을 지켜내야 한다. 김연아가 자신이 수년간 갈고닦은 훈련을 경기장에서 남김없이 토해내고 마무리 동작을 할 때 사람들의 눈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은 비단 피겨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녀의 노력, 영광스러운 결과가 합쳐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김연아처럼 노력하고 김연아처럼 성공해야 한다. 결과가 좋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어떤 체육인처럼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 매일 이렇게 하는 거야.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하는 연습벌레가 되는 것. 그리고 언젠가 공중파 방송국에서 아나운서가 되는 것. 그게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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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씻고 스트레칭을 한 후 침대에 누웠는데 배가 아파서 다시 벌떡 일어났다. 몸에서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나는 상황이 반복됐다. 휴대폰을 찾아 119에 전화할 정신도 없었다. 그러다 배의 심한 통증과 함께 잠시 정신을 잃었다.

동생은 집에 없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일평생 도움이 되지 않는 애다. 아플 때라도 집에 있지.

깨어났을 때 나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곳이 없었다. 잠시 친구가 생각났지만 다이어트를 해서 결국 이렇게 됐다며 자신의 판단이 맞았다고 우월감을 느낄 지민이의 얼굴이 상상됐다. 친구를 부를 수는 없었다. 나는 콜택시를 불러 가까운 대학병원의 응급실을 갔다. 응급실에서도 정확히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아침이 되어 학원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검사는 너무 길었다.

대학병원은 예약자가 밀려있어 다른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웬만하면 병원은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통증이 자꾸 심해졌기 때문에 가긴 가야했다. 하지만 중소병원에서도 원인을 잘 알 수 없다고 했다. 성형외과에서도 부작용으로 복통과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배가 아프고 고열이 나는 게 양악수술의 부작용은 아닐 거라고 했다. 나는 점점 불안해졌고 엄마에게 말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을 하고 엄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지만 이대로는 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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