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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문제들, 또 다른 나와 같은 아이들의 고통

아무도 나에게 내가 하는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가는데,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문제를 공유하지 못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여전히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나와 같은 아이는 나와 비슷한 궤도를 걸으며 자신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청소년들을 무분별한 다이어트 정보나 잘못된 의약품 정보로부터 보호하는 제도는 없다. 청소년들이 해당 정보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 아주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게임을 12시 이후로 하는 것도 규제하고, 음란물도 보지 못하게 하지만, 무작정 굶고, 약을 먹는 등의 무리한 다이어트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아무도 마련해주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하필이면 그 시기에 특별히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청소년기 여자 아이들의 발육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내 친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월경을 처음 시작한 데 반해 나는 중 3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무려 4년 차이다. 2차 성징이 일어나면 여자아이들의 허벅지는 두꺼워지고 가슴이 크고 어깨가 넓어진다.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서 덩치가 커지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만 달라져서 집단에 소외 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는 대중매체나 주위에서 본인보다 체격이 큰 사람을 본적이 없는 것도 아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동료 집단의 외모 지적과 매체에서 나오는 외형에 대한 강요 등은 아이들을 가혹한 다이어트의 세계로 몰아간다. 그리고 그 시기에 생애 최초의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다이어트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음식을 제한하려고 한다.  그런데 안먹기는 참 힘들다. 음식이 앞에 있으니까. 배가 고픈데 음식의 욕망을 이기기는 너무 힘들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안 먹는 방법을 검색해 보게 되고 단식 관련 커퓨니티나 거식증에 걸리고 싶은 사람들, 프로아나 카페를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거식증은 요즘 다이어트의 병적 측면의 트렌드다. 거식증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점을 시사한다. 초기에 거식증 걸리는 청소년들을 분석해보면 계부로부터 성폭행 당한 아이들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들은 최대한 성적으로 매력이 없어 보이기 위해 먹지 않아 발육을 최대한 지연시켜야 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마른 게 성적 매력을 감퇴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본능도 거스르고 거식증에 걸려 마를 만큼 우리는 본능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거식증이 걸리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프로아나다. 거식증에 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찬성을 뜻하는 프로와 거식증의 앞자인 아나를 합쳐 프로아나다. 즉, 거식증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현재 다음이나 네이버의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되는 프로아나 카페는 5, 6개 정도로 가장 많은 곳은 회원수가 2,000명에 이른다.

이들의 8 계명, 그 중에서도 8번째 계율은 섬뜩하다.


프로아나 8계명


첫째, 기름진 음식은 벌 받을 각오하고 먹으라.

둘째, 칼로리는 언제나 계산해야 한다.

셋째, 몸무게 저울이 모든 것이다.

넷째, 살 빼는 게 사는 길, 살찌는 건 죽음이다.

다섯째, 무조건 말라야 한다.

여섯째, 배고플 때는 화장실 청소를 하라.

일곱째, 역겨운 행동을 해서 입맛을 달아나게 하라.

여덟째, 혀를 면도칼로 베어서라도 먹지말라.


나는 회원이 가장 많은 한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홈 화면에는 기형적으로 말라 정상적이 생활이 불가능 해 보일 정도로 깡마른 여자 사진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시커먼 화면에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려있었다. 물론 내가 들어간 이유는 거식증에 걸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청소년들은 먹지 않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나프탈렌을 혀에 올려두어 혀가 마비되게 만들어 음식을 먹지 않기도 하고, 음식을 뜯어 놓은 뒤 그 위에 구더기를 풀어 혐오스럽게 만들어 먹지 않기도 했다. 면도칼로 혀를 베어 내는 것은 먹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가학적인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이런 아이들이 과연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할 이 시기에 이 소녀들의 열정은 어디에 쏟아지고 있는가? 이 모든 행동들은 정말로 생명에 위협이 가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보호 조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음란물은 규정하면서 청소년들을 망치는 연예인들의 '망언 시리즈'는 눈감아 준다. 연예인들은 뼈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도 살이 쪘다며 살을 빼야겠다고 말한다. 그 어떤 행동보다 청소년들의 미래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로 보인다. 


내가 다이어트에 관한 청소년 문제를 첫 번째로 꼽은 이유는 청소년기 때 받은 또래 집단의 영향은 자라서도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소한 친구의 한 마디로 내 인생이 종종 결정되기도 한다. 

친구가 무심코 나에게 "넌 왠지 어른 되면 TV에 나올 것 같아." 라고 한 말도 내가 언론을 전공한 무시못할 이유 중에 하나인 걸 보면 그렇다. 그 당시는 누구보다 친구가 중요하고 또래 집단이 정한만큼만 튀고 싶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 중에는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종목에 따라서 체중도 차이가 많이 났다.  그 친구들은 당시 164cm에 55kg인 나에게 뚱뚱하다고 여자라면 살을 빼야 한다고 했다. 물론 나에게만 뚱뚱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도 표준 체중을 가졌지만 뚱뚱하다고 규정짓고 함께 다이어트를 했다. 우리는 점식 식사를 자주 거르고, 살이 찔까봐 먹던 음식을 뱉기도 했다. 그리고 의학적 비만인 친구들의 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친구들이 했던 말들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여자는 예뻐야 한다.', '나는 뚱뚱하다.' 와 같은 말들은 슬로건이 되어 성인이 된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또한 그 때의 불규칙한 식사 습관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직장에 다니시기 때문에 내 식습관을 바로 잡아 주었다면,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난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었다면 난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의 부모님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 단지 나는 사회에서 이렇게 길러져버렸을 뿐이고, 아무도 내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힌트를 주지 않았을 뿐이다. 


청소년 여자 아이들이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이유는 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옷을 입고 심지어 비슷비슷한 머리 스타일로 등교해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6년을 보내다 보면 남과 다르고 싶은 욕구가 있을 만도 하다. 학생에게 남들과 좀 다른 어떤 것은 공부거나 외모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시스템상 소수일 수 밖에 없다. 1등부터 꼴등까지 차례로 매겨지기 때문에 상위권은 정해진 숫자만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모는 가꾸기 나름이다. 다들 개성있게 예뻐질 수 있기 때문에 터키 여자들의 히잡처럼 그들은 같은 교복에서도 개성을 찾고 어떻게 하면 교복이 더 예뻐보일까를 고민한다. 치마를 줄여 가는 다리를 돋보이게 하기도 하고 가슴을 강조하기 위해 조끼를 줄이기도 한다. 교복을 통해 당대의 가장 이상적인 몸을 가진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다. 개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우리는 평균을 찾아가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왜,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게 되었을까?

왜 건강한 몸이 아니라 마른 몸을 동경하는 사회에 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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