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 /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 지음
책장에 꽂히지도 못하고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누워있던 <트라우마 사전>을 발견했다.
휴지로 먼지를 닦아내고 책을 펼쳤다.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꽤나 열심히 읽었던 흔적들이 드러났다.
그런데 왜 거기서 그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워있었을까.
오랜만에 다시 잡은 책은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나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복수심을 키우기보다는 그저 어른이 되면 그 집을 떠나 혼자 살길 바라는 지극히 소심한 캐릭터다.
쉽게 의기소침해지고 매사 자신감이 부족하다.
낯가림이 심하고, 쭈뼛거린다.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밝히거나 내세울 배짱 같은 것 역시 없다.
악몽에 시달린다.
행복한 순간이 오면, 불안해진다.
좋은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작은 친절을 베풀어주면 쉽게 감동한다.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며 큰 나의 주인공은 대충 이 정도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트라우마 사전>에서 위와 같은 경우를 찾아보았다.
내가 설정한 특징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터무니없는 설정을 한 건 아닌지.
생길 수 있는 잘못된 믿음 중에서-
*내 인생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을 되돌리려면 복수를 해야 한다.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공격해야 한다.
음...나의 주인공은 복수나 공격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데?
가질 수 있는 두려움 중에서-
*행복이나 성공이 두렵다.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받았던 학대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말한 보호자 말이 옳았다.
그래... 나의 주인공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이 바로 이거야.
그래서, 가능한 반응과 결과들은 뭐가 있을까?
책에 나온 여러 가지 반응과 결과들 중에서 나의 주인공과 맞아떨어지는 걸 찾아보았다.
*악몽을 꾸고, 야경증을 겪는다.
*자신의 능력, 재능,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감정을 억제해서 억눌렸던 감정이 이따금 폭발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힘들다.
*작은 일에서 기쁨을 찾는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는 작은 일에도 기뻐한다.
이제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게 본격적인 판을 짜야겠다.
극복의 기회를 선사하자.
그렇게 되면 나의 주인공은 이제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될까.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게 될까.
감정을 표현할 줄 알고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작은 일에서 기쁨을 찾는 건, 그대로 두자.
겁내지 말고, 어깨 펴.
네 옆에는 그 남자가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