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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by 차분한 초록색

<트라우마 사전>에 이어 펼쳐 본 책 <몸은 기억한다>


오래전, 드라마 단막극 대본을 쓸 때 참고했던 책이었다.

뭐든 잘 까먹는 내가 이 책에서 기억하는 유일한 내용은 '나를 신경 써 주는 어른'에 대한 글이다.


위탁 보호를 받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영원함'이라는 단어가 큰 의미를 갖는다.

'나를 신경 써 주는 어른 딱 한 명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이 아이들의 모토다.

-p.540


'나를 신경 써 주는 어른 딱 한 명'이라는 말이 가슴에 꽂혀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오래전에 이 책을 읽고 오갈 데 없이 혼자가 된 열다섯 살 소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신경 써 주는 어른을 만나 마음을 열고, 희망을 갖게 된다는 내용의 대본을 썼고, 냈고,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 내 소설 속 주인공은 어린 시절, 자신을 진심으로 신경 써주고 걱정해 주었던 단 한 명의 어른을 찾고 있다.


"크면서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나요?"

우리가 인터뷰한 환자들은 4명 중 1명이 어릴 때 안전하다고 느꼈던 사람을 단 한 명도 떠올리지 못했다.

... 어린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대상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돌봐 주는 사람도 없이 세상에 나온다고 상상해 보라.

-p.227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나 자신을 보면 미소가 번지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면, 필요할 때 도와주러 달려와 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면...

-p.151



너무나 끔찍한 상황 아닌가.

다행히 나의 주인공에게는 짧게나마 따뜻한 기억들이 있다.

미약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들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주인공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제 그녀가 찾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은 벌을 받게 해야 되는데...


문득 영화 <영웅본색>의 대사가 떠오른다.


가운데 아저씨가 했던 말... 아마도 "인과응보가 없는 줄 알았나?" 였던 것 같다.


인과응보에 대한 대사였는데...



트라우마에서 인과응보까지.

이러니 소설의 내용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서 헤매는 건 아닐까.




<영웅본색 이미지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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