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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닥뜨린 시

최승자 / 미망 혹은 비망

by 차분한 초록색

우연히 어떤 시 한 편을 맞닥뜨렸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나.

이 시를 쓸 때 시인은 어떤 마음이었나.

알 수 없지만 문득 나는 그 시에 사로잡힌다.



아무도 모르리라.

그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으리라.

그 세월의 내막을.


세월은 내게 뭉텅뭉텅

똥덩이나 던져주면서

똥이나 먹고 살라면서

세월은 마구잡이로 그냥,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내 정신과 육체의 한가운데서.

저 불변의 세월은

흘러가지도 못하는 저 세월은

내게 똥이나 먹이면서

나를 무자비하게 그냥 살려두면서.


-최승자 <미망 혹은 비망 1>-



시집 뒤쪽의 해설을 읽어본다.


똥은 시간이 존재자에게 가하는 일종의 폭력에 대한 상징이면서, 그 시간의 폭력을 당한 시적 자아가 세계 전체를 향해 다시 내던지는 저주의 말이다.

-최승자 시집 <내 무덤, 푸르고 p.74>


똥의 이미지는 버림받은 실존에 대한 자학이며, 동시에 세계에 대한 배반과 부정의 말인 것이다.

-최승자 시집 <내 무덤, 푸르고 p.75>



해설은 해설일 뿐.

나는 그저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



모두에게 있는 삶의 서사.

나는 그들의 똥덩어리.

나는 그들에게 똥이나 먹으라고

똥덩어리를 던지면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살려두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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