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뷰> 인터뷰집-세계적 작가들이 말하는 창작에 관한 모든 것
연재 중일 때는 다른 연재소설을 읽지 못한다.
내 글이 너무 형편없어 보여서 더는 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에.
다른 이들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참았던 나는 연재가 끝나자마자 웹소설 상위랭킹 20위까지의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있다.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있는 나는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
삼국지 8권을 마저 읽고, 사강의 패배의 신호를 읽었다.
무려 7년 전에 사두었던 뉴욕 검시관의 하루를 드디어 읽었고, 창작자를 위한 전통 무속 가이드를 읽었다.
몇 권의 시집과 그 시인이 쓴 수필집을 읽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쓰기라는 오만한 세계>를 읽다가 결국 사고 말았다.
밑줄을 긋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이렇게 해 봐.
나도 그랬어.
그 방법도 괜찮아.
누구나 다 그래.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는데, 마침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제길, 저는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윌리엄 블레이크에 열광했고, 마흔이 되어서야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읽었고, 마흔다섯이 넘어서야 루이페르디낭 셀린에 대해 들었어요. (커트 보니것)
-p.36
나는 커트 보니것의 인터뷰에서 심심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절대 들을 수 없을 고백을 했다.
나는 몇 년 전에야 당신의 글을 알게 되었다고.
당신이 쓴 해리스 버저론을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고.
첫 문단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첫 문단을 쓰는 데 몇 달이 걸리는데, 일단 첫 문단이 생기면 나머지는 아주 쉽게 나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p.131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피가 흐르는 어떤 이미지.
백 년의 고독을 읽으면서 교실 천장에서부터 주르륵 피가 흘러내리던 영화 여고괴담을 떠올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늦게 시작한 작가들의 전례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늘 스탕달을 사례로 드는데, 그는 마흔이 될 때까지 글쓰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지요. (시몬 드 보부아르)
-p.196
저도 아직 늦지 않은 거죠?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세요.
아무 계획 없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죠.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해두지 않습니다. 그저 기다립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p. 261
당신은 부지런한 천재니까. 그렇죠?
제가 타고난 소설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플롯을 짤 때 몹시 애를 먹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꾼이라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납니다. 제가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재능이지요. (올더스 헉슬리)
-p.299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요?
지난 30년 동안 소설을 써왔으니 실력이 좀 늘었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아직도, 결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막다른 길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저는 어째야 할지 모릅니다.
아직도! 30년이 지났는데도요. (오르한 파묵)
-p. 362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올더스 헉슬리의 말도 진실일 듯하네요.
나는 혼자 묻고, 혼자 답하며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쳤다.
진실된 조언들, 가슴에 새기고 다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