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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공항과 포도맛 환타

2023년 6월 오사카여행

by 차분한 초록색

2023년 6월. 16년 만에 간 일본. 간사이 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폭우로 인해 철도가 운행 중단되었으니 버스나 택시를 타라고 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우리는 자연스레 대열에 합류했다.

조금 지루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 차례가 오고 그럼 택시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뭐라도 사 먹일 생각으로 아이를 데리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공항 안에서 캐리어를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아이를 앉힌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뭔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은 바닥에 까지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식당과 카페는 모두 문을 닫았고,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자판기 음료뿐이었다.

아이는 포도맛 환타를 하나 샀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받은 과자와 자판기에서 뽑은 포도맛 환타를 마시며 기나긴 기다림을 시작했다.

우리 뒤에 서있는 일본인 아저씨의 태연한 모습과 어리둥절한 채 새로이 대열에 합류하는 외국인들을 보며 어쨌든 이 줄에 서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택시는 드문드문 들어왔고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그러나 줄이 짧아지는 건 택시를 타고 떠난 사람들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아마도 공항 안에서 노숙을 택했으리라)이 많아서 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공항버스도 전철도 모두 다 끊긴 상황.

택시도 이제 탈 수 없으니 줄도 더 이상 서지 말라는 표지판을 들고 돌아다니는 공항 직원들.

택시 줄에 서지 않으면 어디로 가란 말이지?

표지판을 든 직원에게 물어보면 버스표를 사라고 한다.

버스표를 사러 가면 이미 매진이니 살 수 없다고,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도돌이표 같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16년 만의 일본. 아이와 함께 처음 가는 오사카여행.

내가 즐겨 다니던 곳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함께 즐기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우리의 계획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여행 계획을 하면서 즐겨 들어가던 인터넷 카페를 들어가 보니 지금 간사이 공항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누군가가 친절하게 써준 댓글을 보았다.

자기도 그런 일을 겪어본 적 있다고, 그럴 때는 4층 출국장으로 가서 들어오는 택시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일단 남편을 그대로 줄에 세워두고 4층 출국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포도맛 환타를 손에 꼭 쥐고 나를 따라왔다.

출국장으로 올라가면서 아이가 말했다.

“아까 짜증내서 미안해요. 그런데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었겠나. 나 역시 이 상황이 무섭고 당황스러운데.

어쩌면 우리는 낯선 타국의 공항에서 노숙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먹을 거라고는 자판기 음료뿐인데.

나는 아이를 다독이며 4층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마침 한 아빠가 가족들만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내는 것을 보았다.

전부다 탈 수 없으니 일단 가족들 먼저 태워 보내는 것 같았다.

전쟁통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떠나보낸 한국인아빠에게 다가가 줄은 어디에 서면 되는지 물었다.

그는 와중에도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냥 아무거나 오는 택시를 잡으면 된다고, 줄은 따로 없다고.


나는 남편에게 연락했다. 남편이 4층 출국장으로 합류했다.

우리는 각각 떨어져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 자동차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뛰어들다시피 택시를 잡았다.

혹여나 누군가 호출한 차량이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타도 되는지 물었다.

택시 기사님이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목적지를 말하자 타라고 한다.

그때의 기쁨이란!

우리는 마침내 자정이 다 된 시간에 호텔에 도착했다.

장장 8시간 만에 공항에서 벗어난 것이다.


오사카의 첫날.

우리는 편의점 삼각김밥과 캔맥주로 저녁을 대신했다. 그래도 좋았다.

한 명은 더 태울 수 있었는데.

나는 가족을 먼저 태워 보냈던 한국인 아빠가 생각났다.

그는 아마도 공항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다음날 가족을 만났겠지.

자칫 나쁜 기억으로 시작될뻔했던 우리의 여행은 극적인탈출과 친절한 기사님과의 만남으로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20대 때는 일본의 비싼 교통비 때문에 택시는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이렇게 택시에 대한 한풀이를 하는구나 싶어 웃음도 났다.

아이는 그때의 기억이 모험담처럼 남았나 보다.

간사이공항 대탈출이라는 작품까지 만든 것을 보면.


그때 마셨던 포도맛 환타는 얼마나 단비 같았던 걸까.

아이는 환타의 비닐 띠지를 버리지 않고 떼어서 집에 가져와 거실 창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번 겨울의 오사카 여행에서도 귀국하는 날 간사이 공항 자판기에서 포도맛 환타를 뽑아 마셨다.

그만큼 그때 마신 포도맛 환타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지금도 그날의 간사이 공항을 생각하면 포도맛 환타가 떠오른다.

우리의 첫 일본여행은 그렇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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