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의 단상
드디어 어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제는 열심히, 잘, 쓰면 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 마냥 설레고 또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설렘과 두려움은 각각 1:9 정도.
이상하다.
계획했던 대로 3편의 무료연재 완결 후 투고.
운 좋게도 계약까지 오게 되었는데 왜 기쁘지가 않을까.
투고 합격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하루 종일 들떠서 방방거렸는데.
대체 왜?
두려움이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잘 써야 한다는 두려움.
나는 어제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투고 이후,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고 꾸역꾸역 써 내려갔던 글들을 전부 다 휴지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어졌다.
도서관에 갔다.
책을 두 권 빌려왔다.
햇살은 뜨겁고 더웠다.
그런 주제에 바람은 또 어찌나 많이 부는지 양산이 뒤집어졌다.
뒤집어진 양산을 펴서 가방 안에 욱여넣었다.
집에 온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책을 올려두고 다시 집을 나섰다.
장을 보러 가는 길은 우거진 나무 덕분에 그늘이었다.
바람은 없었다.
바람이 없어서 양산을 펼쳤다. 그늘진 길을 걸으면서 양산을 썼다.
고춧가루와 참깨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가게 안에서는 미숫가루 시음 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 여름이면 마시던 얼음이 가득 든 미숫가루가 생각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 장바구니에는 고기와 계란과 미숫가루가 들었다.
고춧가루와 참깨는 없다.
어차피 오늘 저녁은 혼자다.
먹는 게 귀찮아서 굶었다.
늦은 밤, 아이를 데리러 학원으로 간다.
늦은 밤, 허기가 귀찮음을 이겼다.
김밥을 한 줄 먹었다.
집에 오고, 아이가 잠들고.
책을 읽었다.
글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