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가을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동반에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일찍이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소설 <은교> p.55
"여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름에 죽는다는데, 정말일까?"
"난 장미가 좋아요. 그런데 장미는 사계절 내내 피니까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봄에 죽고 여름에 죽고 가을에 죽고 겨울에 죽고 네 번이나 거듭 죽어야 해요?"
-다자이 오사무 <사양> p.45
하나의 일이 매듭지어지기까지,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보낸 날들이었다.
<사양>을 읽었고,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었고, <은교>를 읽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도 읽고, <오만과 편견>은... 읽다가 포기하고,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다시 꺼냈다.
사이사이 여러 웹소설도 읽었다.
역시 안 될 거 같아 (좌절)
나도 쓰고 싶어 (욕망)
역시 안 될 거 같아 (다시 좌절)
나도 쓰고 싶어 (다시 욕망)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과 괴로움에 의기소침해진다.
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사는 집에는 항상 샹들리에가 있다.
그리고 나는 장미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여름은 샹들리에.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네 번이나 거듭 죽어야 하나요? 하는 그런 생각.
여름은 그저 파랗지. 덥고 짜증이 섞인, 어딘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떠밀려 다니는 계절.
장미는...
모르겠다.
나는 요즘 꽃 한 송이 사지 않는다.
어차피 시들어 죽어버릴 텐데. 귀찮다.
화병에 꽂고, 물을 갈아주고... 그래봤자 어차피 죽어버릴 텐데.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마음 어디에도 꽃 한 송이 놓아 둘 여유가 없다.
<이미지 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