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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사전

작가를 위한 배경 연출 가이드

by 차분한 초록색

글을 쓰다 보면 배경 묘사에서 턱 막힐 때가 종종 있다.

가보지 못한 곳이 가본 곳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나는 그럴 때마다 검색창에 장소를 입력하고 이미지를 띄운다.

그다음엔 나의 표현력과 어휘력 부족에 맞닥뜨린다.

저런 바닥을 뭐라고 하지?

저런 문을 뭐라고 하지?

번쩍번쩍 화려하고 웅장하고 비싸 보이고...

이걸 뭐라고 쓰면 되지?

평소 책을 읽을 때 장면묘사가 나오면 지루해하며 휘리릭 넘겨버리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대체 뭘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묘사를 하지?

그냥 단출한 살림살이라든지, 크고 화려한 주방이라든지.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하면 안 되나?

글자 수 채우기인가?

건방진 생각들을 했던 나 자신을 탓한다.


그리고 때마침.

<디테일 사전>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트라우마 사전>을 쓴 작가의 책이었다.

(외에도 작가는 <딜레마 사전>, <서스펜서 사전>, <트러블 사전>, <캐릭터 직업 사전>등을 집필했다.)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

여하튼, 서둘러 <디테일 사전-도시 편>을 손에 넣었다.

(디테일 사전은 도시 편과 시골 편으로 나뉘어 있다)


나의 주인공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

나는 196페이지의 '병실'을 펼쳤다.


안전 보조 손잡이가 달린 샤워실, 손목 밴드형 혈압계, 바퀴 달린 테이블, 폐주사기 수거함

링거 거치대를 끌고 나온 환자의 발소리

커튼을 칠 때 금속 커튼 봉을 스치는 커튼

라텍스 장갑, 손 소독제

피부를 쓸어내리는 차가운 알코올 솜, 피부를 찌르는 따끔한 링거 바늘...


그리고 이런 것들을 참고하여 말미에 쓰인 배경 묘사 예시까지.


<배경묘사 예시>

레디는 잠에서 깼다. 천장의 눈부신 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군가 그녀의 손등에 차가운 무언가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 시원하고 미끈거리는 감촉은 곧 사라지고 다른 무언가가 손등을 쿡 찔렀다.

그녀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가 링거 줄을 손등에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p.198

(배경묘사보다 행동묘사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읽고 나서야 뒤늦게 기억 속 병실 풍경이 떠오른다.


작은 각티슈와 100매 자리 물티슈, 종이컵, 미지근하게 식은 생수가 놓여있던 침대 옆 서랍장.

충전기를 꽂은 휴대폰.

구겨진 시트, 헝클어진 침구.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린 삼선 슬리퍼.

치약과 칫솔을 꽂아 둔 머그컵

미약한 기침소리와 가래 끓는 목소리.

몸을 뒤척일 때 나는 메마른 신음소리.

차르륵 커튼이 걷히면서 불쑥 들어오는 의사와 간호사.

늘 바쁜 듯 종종거리는 그들과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진 환자들.


...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녀가 살짝 몸을 뒤척이자 작은 침대가 삐거덕 소리를 낸다.

더듬더듬 손을 뻗어 서랍장 위에 놓아둔 휴대폰을 잡으려다 툭, 종이컵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메시지를 확인한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끄응.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졌다.

침대 가드를 젖히고 다리를 내렸다.

아, 진짜!

여자의 얼굴이 마뜩잖게 구겨졌다.

침대 밑에 슬리퍼가 한쪽뿐이다...


위의 예시처럼 한 번 써본다.

후훗, 디테일을 활용한 문장은 역시 어렵군.

그래도 계속 쓰다 보면 좋아지겠지.


좋아질까?

아마도.



아무튼,

사전 시리즈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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