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심삼일 열 번이면 한 달입니다

by 차분한 초록색

나는 작심삼일의 달인이다.

연초연말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욕구가 샘솟는다.

뭔가 대단한 계획을 짠다거나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과 다짐은 늘 작심삼일로 끝나버린다.

자기 계발서 백날 읽어봤자 무슨 소용일까 하는 자괴감과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면 불끈 솟아나는 의욕은 서로 뒤엉켜서 마음을 어지럽힌다.



차라리 그냥 포기해 버리면 어떨까?

애초에 계획이나 목표 따위 세우지 않는다면 자괴감이 들 이유도 없을 테니.

그냥 매일 하는 일만으로도 시간은 바삐 흐르고 늘 정신없이 피곤한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 계획을 짜고 목표를 세우고 뭔가를 계속 배우려 하고, 뭔가를 계속하려고 한다.

그건 어쩌면 나의 불안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내게 속삭인다.

“이번엔 진짜야. 나를 믿어봐. 나를 읽어봐.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넌 성공할 수 있어.”

라고 갖가지 말로 유혹한다.

나는 매번 속으면서도 또 속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어떤 때에는 제목에 꽂혀서 어떤 때에는 예쁜 표지에 이끌려 또 책을 잡는다.

그러고는 마치 새로운 내용을 처음 접하는 사람처럼 비슷한 내용의 자기 계발서들을 탐독한다.

읽는 와중에는 또다시 새로운 의욕이 샘솟으면서 이번에는 정말 잘 될 것 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매번 속고 또 속는 바보처럼 탐독한다.

그러는 동안 내 몸에 습관이 달라붙는 대신 책장에 자기 계발서의 권수만이 늘어갔다.


누군가 말했다. 자기 계발서 따위 읽지 않는다고.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마치 자신을 한심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아 싫다고. 꼭 그렇게 열심히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거냐고.

이미 너무 바쁘고 힘든데 책을 읽으면서 까지 잔소리 듣는 기분이라 싫다고.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하는 한편으로, 나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 않은 걸까?

그래서 자기 계발서를 읽을 마음의 여유나 한가로움이 남아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진짜 부지런하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은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번 다짐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고 포기하고,

또다시 계획을 세우는 작심삼일의 행태를 반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습관을 체득하고

드디어 자기 계발서와의 이별을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쯤 자기 계발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번엔 진짜야. 내 말대로 해봐. 나만큼 쉽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자기 계발서들은 제각각 자기만의 방법으로 내게 말을 건다.

언제쯤 나는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나의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일주일만 성공하면 보름도 할 수 있어. 보름만 성공하면 한 달도 할 수 있고,

한 달을 성공하면 백일도 성공할 수 있어.”라고 나는 나에게 말한다.

곁에서 불안이 나를 부추긴다. 100일 동안만 해보라고.


갓 태어난 아기들도 100일이 되면 변화를 맞이한다.

100일의 기적이라고 해서 밤낮이 바뀌어 있던 아기가 100을 기점으로 밤에 통잠을 자게 된다.

그때 부모들은 비로소 밤에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다.

그래서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붙었다.

물론 100일의 기적이 비껴가는 아기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다는 건 많은 아기들이 100일을 기점으로 변한다는 것이겠지.


100일이라는 건 변화의 임계점, 변화의 시작이 되는 터닝포인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다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다잡아 100일 동안 실천해 보리라 다짐한다.


이번에도 또 작심삼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역시 난 안돼’라고 생각하며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순간

변화는 영영 일어나지 않는다.

작심삼일이라 비웃어도 좋다.

작심삼일일지라도 작심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삼일 동안이라도 열심히 했으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목표인 100일을 채울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의심하는 한편, 나를 또 믿어본다.

실패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해도 하지 않아도 어차피 시간은 흐르니까.

그럴 바엔 해보는 게 나은 것 아닌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는 열두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