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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의 추억

2023년 6월 오사카 여행

by 차분한 초록색

오사카성은 오사카에 처음 가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꼭 한 번씩은 들리는 곳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그랬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뭔가 기억에 남는 것도 딱히 없었고 오사카성을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가족여행에서 오사카성을 계획에 넣었다.

남편과 아이는 처음 가보는 오사카.

그럼 오사카성은 가봐야지 하는 평범한 생각으로.



2023년의 오사카성 (좌) / 2006년의 오사카성 (우)



여행 셋째 날. 오사카성의 입장권을 샀다.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세상에나! 오사카성을 줄 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하다니.

일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오사카성을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했다.

누구의 성이었고, 해자가 어떻고, 나중에 다시 복원을 했고 등등.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인 것처럼 누군가가 남겨 준 글을 읽고 아이에게 설명한다.

놀라운 건, 그렇게 미리 공부를 하고 설명을 하자 오사카성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림과 조형물로 남겨진 역사의 기록들을 본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의 일들이 섬뜩했다.


천수각 위로 올라가 오사카 전경을 내려다본다.

오사카성 홀이 보인다.

비현실적 추억이 떠오른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평소에는 하지 못할 법한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혼자 공연을 보러 가는 것 같은.


어느 날, 에릭 클립턴이 오사카성홀에서 공연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에릭 클립턴의 팬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보다 저렴한 티켓 가격에 세계적인 뮤지션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의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사람들은 공연을 볼 때 얌전하게 앉아서 본다고 하더니.

이것도 오사카에서는 맞지 않는 말이었나 보다.

나는 사실 가만히 앉아서 듣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라, 내심 일본에서의 공연을 기대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낯선 일은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쉬워진다.

나는 또 한 번 오사카성홀로 공연을 보러 간다.

이번에는 한국에도 꽤 알려진 일본의 뮤지션 호테이 토모야스의 공연이었다.



호테이 토모야스 공연 실황 DVD



사실, 호테이 토모야스의 공연보다는 그와 함께 공연을 하는 차(CHAR)를 보고 싶어서 갔다.

호테이 토모야스와 CHAR 그리고 내가 모르는 또 한 명의 뮤지션(BRIAN SETZER).

이렇게 셋이서 함께 하는 공연이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그들의 공연은 정말 신나고 에너지 가득했다.

호테이상이 오사카 사투리로 인사하자 사람들이 환호한다.

아, 뭐지. 이 흥겨움은.

오사카 사람들의 호쾌함과 흥청거림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원래 CHAR의 연주가 듣고 싶어서 갔었는데, CHAR 보다는 그날의 분위기 탓인지 호테이의 연주에 더욱 빠져들고 있었다.




공연실황 DVD 사진(좌) / 2006년 전철 안에서 발견한 CHAR의 광고(우)



아이와 함께 천수각 위에서 오사카성홀을 내려다보며 나는 오래전 내가 본 공연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정말 저 안에서 그들의 연주를 들었었던가 싶은 기분이 든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혼자 공연을 보러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다시 어딘가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다면, 그리고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어떤 뮤지션이 공연을 하러 온다면 혼자서 가뿐하게 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사카성에 대한 나의 추억은 이렇게 생뚱맞은 것이다.


아이는 어떤 추억을 만들었을까.

아이에게 물어본다.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

오사카성을 보고 나오는 길에 먹었던 오코노미야키와 성 안에서 사무라이 복장으로 쓰레기를 줍던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후훗. 역시 그렇군.

내가 오사카성 보다는 오사카성 홀에서 본 공연이 추억으로 남은 것처럼.

어쩌면 여행이란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 스쳐가는 풍경들.

그런 것들이 선명하게 남아 추억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사카성을 나와 발길 가는 대로 걷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코난 조형물이 반가웠다.

한적한 도심. 카페에 가득한 사람들.

우리는 한적한 거리를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별다른 계획도, 준비도 없이 시작한 우리의 첫 오사카 여행.

남편과 아이는 나만 믿고 따라왔지만, 사실 나도 오사카 여행은 처음이다.


오사카성에서 우리는 성의 웅장함이나 그 성에 담긴 어떤 역사적 의미보다는 생뚱맞은 것들에 마음을 쏟고 기억에 담는다.

언젠가 또 오사카성을 가게 된다면, 그때는 제대로 성을 느낄 수 있게 될까.

어쩌면 그때는 또, 예전에 아이와 함께 했던 것들을 추억하면서, 나오는 길에 들렸던 가게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먹고, 요미우리 방송국 근처를 거닐며 코난과 사진을 찍고,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2023년 여름을 추억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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