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오사카 여행
아이와 함께 오사카에 가면 꼭 가는 곳 중 하나는 USJ가 아닐까.
나는 테마파크나 놀이공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는 도중에 이미 지쳐버리고 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연간회원 8년 차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가는 여행이니, USJ를 안 갈 수는 없지.
USJ를 가려고 알아보니 예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진 시스템에 어리둥절했다.
아니, 그냥 “오늘 USJ 갈까?” 생각 들면 가서 표를 사고 입장했던 것 같은데,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이니 뭐니, 게다가 날짜별로 가격도 다 다르고, 조기 입장권이며 익스프레스 패스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말들 뿐이었다.
남편이 전담해서 USJ입장권을 예매했다.
우리는 놀이기구를 잘 못 타니까 그냥 조기입장권을 사서 가는 걸로 정했다.
오사카성을 본 다음날. 우리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USJ에 도착하니 아침 7시쯤이었는데, 이미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자리를 깔고 앉아서 아예 그곳에서 아침을 먹는 이들도 꽤 많았다.
달랑 생수 2병만 챙겨 온 나 자신이 조금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오픈 시간이 되고, 문이 열리자 조기입장권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들어갔다.
우리는 경보하듯 걸어 닌텐도 월드로 직행한다.
닌텐도 월드를 연달아 두 번이나 탔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우리의 행운이었던 걸까.
그다음부터는 뭐든지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쥬라기 파크의 놀이기구를 기다릴 때만 해도 괜찮았다.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워터월드 공연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날 하루종일 한 것은 이게 전부가 되어버렸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고, 우리가 가져간 물은 다 떨어졌다.
점심은 어찌어찌 운 좋게 먹을 수 있었지만, 유명하다는 해리포터의 버터 비어는 그 긴 줄에 놀라 포기해 버렸다.
날씨가 더워서 인지 갈증이 났다. 겨우 구석진 장소에 있는 자판기를 발견했다.
생수를 두 병 샀다. 그건 마지막 행운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자판기 앞에도 줄을 선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진풍경이었다.
자판기 앞에 늘어선 줄이라니.
물건을 파는 가게 안에도 사람들은 말 그대로 바글바글했다.
힘든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뭘 사 먹을 힘도 없이,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USJ에 어둠이 내리기 전, 우리는 그곳을 뒤로하고 떠났다.
사진 속의 우리는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지만, 사진 밖의 우리는 더위와 기다림에 지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사진 속의 우리를 보면 그때의 모든 기억들은 즐거운 추억이 된다.
그럼 된 걸까?
우리는 그때 힘들고 지치고 뾰족했지만, 기억은 행복하고 즐겁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비현실적 공간이 주는 즐거움과 기억은 추억마저 왜곡시켜 버리는 것일까.
나는 대체 어느 공간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떤 기억을 만들고 온 것일까.
마치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에 나오는 괴이한 경험과도 같다.
우리는 어느 이름 모를 섬에 불시착해서 갖가지 기괴한 경험을 한다.
현실세계에서는 보지 못한 경험들을.
섬을 탈출해 현실로 돌아오면 그것들은 진기한 경험이 되고, 추억거리가 된다.
란포의 소설 속에서 괴이한 경험을 한 이후에 백발이 되어 버린 젊은 남자처럼,
우리는 단 하루의 비현실적 공간에서의 체험으로 주름이 몇 개는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 흰 머리카락이 나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과 우리의 차이점이라면 그날의 일을 떠올릴 때, 우리는 힘든 기억은 잊고 즐거웠던 것만을 선명히 기억한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이런 비현실적 체험도 아주 가끔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