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내가 만들었던 노래 가사

by 차분한 초록색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무슨 노래했었어요?"

"엄마는 직접 만들었지. 가사도 직접 쓰고."

"오~ 어떻게?"

"그냥 만드는 거지 뭐."

"가사 적어줘요."


아이가 자신의 다이어리를 들고 왔다.

내가 썼다는 노래 가사를 적어달란다.

그런데 잘 기억이 안 난다.

벌써 20년 전.

멜로디도 가사도 흐릿해졌다.

그래도 개중에 제일 좋아했던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는 아직도 기억이 났다.


제목은 연두색.

나는 아이의 다이어리에 연두색의 가사를 적었다.



<연두색>

너에게 잘 보이려고 노랑이 되었는데

넌 초록이 좋다 그래 노랑은 너무 싫대

너에게 잘 보이려고 초록이 되었는데

넌 나보고 초록과는 어울리지 않는대


그래 그래 난 아니야

그래 그래 난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그래 난 노랑도

그래 그래 난 초록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그래 난 그저 연두색일 뿐



"엄마는 이때도 초록이었네. 차분한 초록색이라는 닉네임 절대 바꾸지 마요."

'음... 그런데 난 초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저 연두색일 뿐이었던 나는 차분한 초록색이 되었고.



<나의 하루>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지. 사람들은 그런 날 보고 답답하지 않냐고 물어.

하루 종일 난 혼자서 웃고 울고 울고 웃고 TV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노래를 부르고

미친 듯이 춤도 추고 그러다가 지치면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고 기타를 튕기며 또 노래를 불러

이게 바로 나의 하루.

.....


하지만 여전히 집안에 틀어박혀 혼자서 TV도 보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그런 걸 좋아하는 나.



"엄마, 다른 건 뭐 더 없어요?"

"기억이 잘 안나. 어딘가 CD가 있을 텐데. 나중에 찾아보자."



또 뭐가 있었더라.



<열다섯 살 소녀>

열다섯 살 소녀, 어딜 가는 걸까. 부러질 듯 높은 하이 힐을 신고.

열다섯 살 소녀, 어딜 가는 걸까. 촌스러운 화장 껌을 씹는 소녀.

.....


"뭐 이런 것도 있었고."

"아니, 애가 왜 이래요?"

"날라리야."

"....!!"



<오누이>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일을 나간 오빠를 기다리는 나이 어린 동생은

....

밤은 벌써 깊었네. 싸늘한 방 안에는 편찮으신 할머니.

할머니는 늘 이 두 어린애들이 걱정이시네.

....


"할머니가 왜 걱정을 해요?"

"애들이 아직 어리잖아. 엄마 아빠도 없는데."

"아..."



<이별>

갑자기 너의 모습 떠오르면 어떡해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서.

....



"화장실에서?"

"응. 연인이랑 헤어지고 나서 아주 슬픈 상황인데 화장실에서 볼 일 보다가 생각나면 웃길 거 같아서 한 번 써봤지."

"설마... 응가 하다가?"

"응"

"크크크크"

"그래도 이 노래가 우리 밴드 공연 메인곡이었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건 연두색이지."



나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리고 문득 두려워졌다.

나는 지금도 그냥 그저 그런...

노랑도 초록도 아무것도 아닌 연두색일 뿐인가.

그리고 또 문득 생각했다.

연두색이면 어때.

난 연두색이 좋은데.


나는 <연두색>을 흥얼흥얼 불렀다.

"오~ 엄마는 진짜 예술적 감각이 있는 거 같아요."

아이가 나를 추켜세워준다.

나는 우리 집에서 만큼은 제이케이롤링이 부럽지 않다.

그러니 뭐 어때.

나는 사실 노랑도 될 수 있고, 초록도 될 수 있는 연두색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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