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늦지 않았다

마쓰모토 세이초 반생의 기록

by 차분한 초록색

도서관에 가지 않은지도 벌써 수개월이다.

어차피 빌려와도 읽지 않고 그대로 반납하게 될 걸 알았기 때문에.

읽어보겠다고 사 둔 책도 읽지 않고 있는 마당에 빌린 책은 더욱 그렇다는 걸 알아버려서.

집 앞 도서관이 증축 공사에 들어간 것도 한몫을 했고.

이래저래 도서관에 발길을 끊은 나는 결국 읽었던 책을 다시 빼들었다.

다른 책들 틈에 끼어 있던 자그마한 책이었다.

제목은 <아직 늦지 않았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가 작가가 되기 전까지 겪은 가난과 소외와 고립의 기록' 이라고 뒷면에 쓰여있다.


3년 전에 산 이 책은 당시 기말 과제를 준비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나는 그때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이라는 소설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 중이었다.

<모래그릇>이라는 소설은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차별과 편견이 어떻게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가고 끝내는 극악한 범죄에 이르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여하튼, 그 소설에서 주인공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 나온다.

어린 시절 산에 올라가 바라보던 별에 대해 말하자 듣고 있던 상대방이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말한다.

"말해봤자 넌 몰라."

말해봤자 모른다는 말이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는 '아직 늦지 않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리온자리를 가르쳐준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단카속에 나왔던 듯한데, 누군가가 그 단카를 큰소리로 암송하면서 하늘을 가리키며 가르쳐 준 것 같다.... 오리온자리는 내 과거의 생활이나 감정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사실 바라보던 곳이 어디였든 간에, 오리온자리를 올려다보는 나는 절망과 슬픔과 고독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p.89-


그래서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졌던 걸까.

어쩌면(아마도) 마쓰모토 세이초는 모래그릇 속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른 많은 책들 사이에서 '아직 늦지 않았다'를 꺼낸 건, 용기를 얻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내가 이 책을 꺼낸 게 아니라 이 책이 나를 부른 거다.

그러니 구석탱이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꽂혀있던 책이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오게 된 거라고.

이 책이 지금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거라고.



맞지?

나는 책을 보며 속으로 물었다.

그래, 맞아.

책이 조용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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