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

16번째 결혼기념일

by 차분한 초록색

해마다 결혼기념일만 되면 꼭 뭔가가 어긋났다.

가려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다거나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된다거나

심지어는 자연재해로 발이 묶인 적도 있다.

성질이 나서 때려치웠다.

결혼기념일 따위!!

이제 하지 말자.

괜히 남편한테 화가 났다.

아이는 이 정도면 거의 저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어제.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던 찰나 남편이 왔다.


어?? 일찍 왔네!

근데 지금 빨리 나가야 돼!


나는 남편이 기껏 준비해 온 선물들을 식탁 위에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갔다.

남편도 내 뒤를 따라 다시 집을 나섰다.

셋이 함께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에 내던져진 꽃다발에서 물이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좋았다.

함께 가서 원하는 걸 직접 고르는 것도 좋지만 나한테 뭐가 어울릴까. 뭘 해주면 좋아할까 고민하며 준비했을 선물이 더 좋다.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종이백에 자그마한 두 개의 상자와 카드가 들어있다.

아이가 눈을 반짝인다.

나는 파자마 위에 목걸이와 귀걸이를 한다.

우리는 케이크에 초를 한 개 꽂고 화병에 꽃을 꽂았다.


엄마! 이번 결혼기념일은 성공적인 거 같아요.


아이가 말한다.


그런데 결혼기념일은 내일인데?


아! 하루 전날에 하면 되나 보다.


징크스를 푸는 방법을 찾았다.

크리스마스이브처럼 하루 전날 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남편과 함께 우리가 즐겨 가는 스타벅스에 앉아 있다.

여유롭게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너무 매워서 아이는 못 먹는, 그래서 늘 가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을 거다.

그리고 아이가 집에 오면 오늘은 하루 종일 같이 놀아볼까 싶다.

사실은 내가 너무 놀고 싶다.

빨리 귀멸의 칼날을 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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