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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도톤보리

2023년 6월 오사카 여행

by 차분한 초록색

얼렁뚱땅 오사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는 아침 일찍 도톤보리로 나갔다.

오후의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다른 한적하고 조용한 도톤보리.

길바닥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까마귀가 깍깍 거리며 날아다닌다.

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른 아침의 도톤보리는 짙은 화장을 지운 여자의 민낯과도 같았다.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 없는 주름과 온갖 잡티가 여실히 드러나 있는 얼굴.

우리는 도톤보리의 맨 얼굴을 본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본다.

그 모습이 또 그 모습대로 좋아서 우리는 천천히 거리를 걸어본다.

이렇게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건 이른 아침만의 특권이겠지.


킨류라멘을 먹으러 간다.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집이라면 생각도 하지 않을 법한 일이지만, 여행이란 그러한 일상의 룰을 가볍게 없애준다.

이른 시간에도 가게 안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라멘을 먹고 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맑은 아침공기 속에서 먹는 라멘은 어딘지 모르게 속을 풀어주는 기분이다.

촌스러워 보이는 용 간판도 금세 그리워지겠지.

라멘을 먹고 나온 우리는 글리코상을 만나러 간다.

이번에는 글리코상과 제대로 한 컷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의 포즈를 따라 해 본다.


16년 만에 처음, 여행으로 온 오사카.

나는 오사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여행을 준비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난 오사카에서의 생활이 후회되었다.

왜 그곳에 살 때 더 많은 것을 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늘 곁에 있으면 소중함을 모르다가 떠나고 나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이른 아침의 한적한 거리와 라피트를 탄 토토로



이제 호텔로 돌아간다. 체크아웃을 한다. 토토로와 함께 라피트를 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출발한다.

이렇게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거리를 첫날 공항에서 그 난리를 겪었던 거구나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지나고 나니 그것 또한 추억이다.

쾌청한 날씨다. 달리는 라피트 안에서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들도 여행지에서는 특별해 보인다.

공항에 도착한 아이는 자판기에서 포도맛 환타를 산다.

"나를 구해준 포도맛 환타"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달콤하고 톡 쏘는 환타의 맛이 무계획으로 떠났던 우리 여행에 종지부를 찍어준다.


아이는 일본에서 인상적이었던 걸로 화장실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두 군데의 화장실이 있다.

하나는 킨텐츠 츠루하시역의 화장실과 또 하나는 난바의 한 고깃집 화장실이었다.

두 군데 다 당연히 더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과 가게가 모두 너무 낡았기 때문에 든 생각이었다) 의외로 깨끗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고깃집의 화장실은 좋은 향기도 났다.

“엄마. 일본은 화장실이 너무 좋아요. 어디를 가도 믿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아이가 말한다.





우리는 공항에서 토토로를 안고 포도맛 환타를 마신다.

여행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 집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머물고 싶다.

아쉬움이 남지 않는 여행이 있을까.





16년 만의 오사카.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 오사카.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고 비행기를 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큰한 음식을 찾는다.

역시 집이 좋다.

동네 음식점에서 칼칼한 부대찌개를 먹는다.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다.

다시 일상이다.

지치고 들뜬 여행의 여운을 잠재워 줄 편안하고 한가로운 밤이다.

밤공기가 좋다. 귀에 익은 말들이 반갑다.

늘 다니는 길. 우리 동네, 우리 집이 좋다.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한동안 여행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겨울의 비행기 티켓과 호텔을 알아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코로나 기간 동안 다니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향일까.

어느새 우리는 12월의 오사카행 티켓을 예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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