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와 입테
겨울 방학을 앞두고 국어학원 입학테스트를 봤었다.
아이가 시험을 보는 동안 상담실에서 상담실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가 풀고 있을 시험지를 본다.
‘이런 걸 아이들이 푼다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학원 시험이 어렵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등학생쯤 돼야 풀 법한 문제들과 읽을 수 있을 만한 지문이었다.
커트라인이 100점 만점에 30점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애들도 많다더니. 그럴만하다고 납득이 되었다.
달변가인 상담실장이 시험지를 회수하며 말한다.
“어머님들께 시험지를 보여드리는 이유는 애가 시험 못 봤다고 혼내지 마시라고 보여 드리는 거예요.”
과연 그렇다.
시험지를 보고 나니, 입테에 통과 못했다고 해서 애한테 뭐라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시간 안에 이 문제들을 다 풀고 맞힐 수 있을지 의문이 드니까.
요즘 학원 입학시험은 왜 죄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어려운 걸까.
이때만 해도 나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 개학을 앞두고 영어학원에 테스트를 보러 다녀왔다.
방학의 시작이 국어학원이었다면, 방학의 마무리는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가 된 셈이다.
아이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부모들은 학원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테스트는 진행되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아이들이 풀게 될 문제들은 고등학생 수준의 문제들과 토플이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나마 우리 애는 큰 축에 속하고 대부분 초등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고등 수준의 문제를 풀고, 토플 문제를 풀어야 한다.
어딘가 기형적이다. 어딘가 허세 가득한 기분이다.
일단 문제는 최대한 어렵게 낸다.
아이와 엄마의 기를 팍 꺾어 버리고 잔뜩 겁을 준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문제들을 풀고 당당하게 학원에 등록한 아이들은 솔직히 다른 어느 학원을 가도 잘할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잘하는 애들만 뽑아서 ‘잘하는 학원, 잘 가르치는 학원’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정기적으로 보는 테스트는 또 어떤가.
아이들은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정기시험을 치르고 성적에 따라 반이 업, 다운된다.
그걸 못 견뎌하는 엄마들은 집에서 또 아이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다.
알아서 기게끔 만드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애들이 잘할 수밖에.
이런 생각들이 설명회에 앉아 있는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하자 견딜 수 없었다.
지금 이런 상황들이 블랙코미디 같다.
레테를 보고 나온 아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우리는 서둘러 학원 앞 분식집에서 대충 점심을 해치우고 아이를 국어학원에 데려다준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는 카페에 가서 오늘 본 레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대체 초등학생들이 왜 이렇게까지 어려운 문제들을 풀고,
왜 이렇게 까지 선행을 해야 하고,
주말도 없이 학원을 가고 공부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이러니 출산율이 1도 되지 않는 게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그렇게 흥분해서 열변을 토하는 사이, 학원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다시 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다.
그리고 간 김에 다음 달 학원비를 결제한다.
<커버 이미지 출처-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