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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전문학의 최고봉 <겐지모노가타리>

다시 하는 공부

by 차분한 초록색

대학원에 재입학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건 일본 근대문학 수업이었다.

나는 근대문학 작가 중 한 명을 연구 과제로 삼아 논문을 쓰리라는 장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던 고전문학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겐지 모노가타리>, 일본 고전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장편 소설이다.

10여 년 전,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만 해도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지 싶었다.

희대의 바람둥이인 주인공 히카루 겐지의 여성편력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게다가 등장인물은 왜 이렇게나 많으며 관계는 또 왜 이렇게나 복잡한 건지.

순정만화와도 같은 아름다운 그림체의 만화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겐지모노가타리>가 대체 왜 추앙받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겐지 모노가타리 -아사키유메미시 <출처:야후재팬>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미처 몰랐을 뿐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 겐지를 만났을 때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이야기의 매력이 이제야 와닿기 시작한 것일까.


히카루 겐지.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의 아버지이자 왕인 기리쓰보는 수많은 후궁들 중 유독 한 여인만을 사랑했다.

후궁들 중 가장 신분이 낮았던 기리쓰보고이는 왕의 넘치는 총애와 그로 인한 주위의 질투 그리고 괴롭힘으로 인해 결국 병을 얻게 되고 죽음에 이른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주인공 겐지는 당연하게도 엄마의 얼굴조차 모른 채 성장하게 된다.


한편, 기리쓰보 고이가 죽은 후 그녀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왕은 그녀와 닮은 여인인 후지쓰보와 결혼을 한다.

겐지는 자라면서 자신의 새엄마이기도 한 후지쓰보가 죽은 생모와 닮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녀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된다.

사실, 이 부분만 보면 굉장한 막장드라마다운 면모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비극의 시작이기도 한 왕과 후궁의 사랑.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왕자. 그리고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신하가 되는, 뭇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미모를 갖고 태어난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 같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시의 정치적 배경과 사회상을 은근히 내비치며 얽히고설켜있다.


단순히 희대의 바람둥이처럼 보였던 겐지를, 그 시대와 배경을 이해하고 읽게 되자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났다.


그가 만난 수많은 여성들은 또 어떠한가.

나는 겐지가 그녀들을 취했다기보다는 그녀들이 겐지를 손에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겐지와 함께,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 개개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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