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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츠무하나> 빨간 코를 가진 아름다운 아가씨

다시 하는 공부

by 차분한 초록색

빨간 코를 갖고 있는데 아름답다고?

그렇다.

그녀는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에 볼품없이 앙상한 몸을 하고,

게다가 코끝은 잇꽃처럼 빨갛다 하여 <스에츠무하나>라고 불린다.



그녀는 <겐지 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 중 유일하게 추녀로 묘사되고 있는 등장인물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아름답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녀의 남다른 성품 때문이다.


처음 겐지를 만날 때만 해도 스에츠무하나는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숫기 없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바로 그런 그녀의 성격이 묘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녀를 보필하고 있는 인물 중에서 머리회전이 엄청 빠른 밀당의 고수가 한 명 있는데, 이 인물의 활약으로 스에츠무하나는 겐지를 만나게 된다.

두 여성의 극명한 대조가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겐지는 나중에 스에츠무하나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가씨의 볼품없는 외모를 본 겐지는 그녀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고, 그녀의 후견인이 되리라 다짐한다.

이러한 감정선이 겐지를 단순히 호색가로만 보일 수 없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되는 듯하다.





하지만 사람의 진면목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드러난다고 했던가.

유배지로 떠난 겐지는 스에츠무하나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중에 도읍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겐지의 후견이 끊긴 후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스에츠무하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하고 심지 굳은 행동을 보여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과 집안의 고풍스러운 물건들을 탐내며 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단 하나도 내어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궁핍하지만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삶을 이어나간다.

그런 그녀를 자기 딸들의 하녀로 삼아 데리고 가려는 이모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이모는 의지를 꺽지 않는 그녀 대신 집안의 시종들 중 아가씨와 가장 가까운 시종을 데리고 간다.

떠날 수밖에 없는 시종에게 아가씨는 뭔가를 해주고 싶지만, 궁핍한 생활이므로 내어줄 것이 없다.


아가씨는 고민 끝에 자신의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가채를 만들어 아주 좋은 향을 입힌 후 선물한다.

이 장면이 스에츠무하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한 대목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왕족으로서의 기품을 잃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려는 모습과

떠나는 아랫사람을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해주려는 마음.

그러니 어찌 이 아가씨가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미지 출처 - 야후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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