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에쿠니 가오리
에쿠니 가오리는 제목을 참 잘 짓는 작가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이 그렇고 [울 준비는 되어 있다]가 그랬고,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이 그렇다.
나는 제목에 홀려 책을 집어 들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부유하는 그녀의 글에 빠져들곤 했다.
오랜만에 간 서점에서 마그리트 뒤라스의 [여름밤 열 시 반]이라는 책을 본다.
몇 번을 들었다 놨다 망설이다가 끝내 그 책을 사고 만다.
결국 몇 장 읽다 말게 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마지막장까지 읽게 되기를 바라면서.
다시,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어느 날.
나는 마그리트 뒤라스의 [사랑]이라는 책을 본다.
지난번에 산 책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또 뭔가에 홀리듯 그녀의 책을 사고 만다.
이건 아주 오랜 시간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그녀의 책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게 다예요]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이게 다예요]는 '육체적 나이로 보아 죽음이 멀지 않은 작가가 그 낯선 경험을 앞두고 써 내려간 말의 파편들이다'라고 했다.
말의 파편들.
아주 오래전, 내게 박힌 그 파편들이 아직도 빠지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읽지도 않을 그녀의 책을 망설이다 사고 만다.
하시모토 씨는 독서광이다. 나도 책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의 애독서를 들자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이라든지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 같은 무섭도록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작품들뿐이라서 나는 감히 명함도 못 내민다. 그래도 반년쯤 전,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해 의견이 일치하여 보드카로 건배하고 호텔 라운지에서 기세를 올린 적이 있어 그날 이후 종종 책을 빌려준다.
-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녹신녹신 중 페이지 184-
표지와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에서 뒤라스의 조각을 발견한다.
그녀의 심장 어딘가에도 뒤라스의 말의 파편이 박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다시 한번 [이게 다예요]를 꺼내 읽어본다.
그러자 그 안에서 내 추억의 파편들이 튀어나왔다.
책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친구의 짧은 메모와 우리가 함께 갔던 다이칸야마의 스낵바 주소가.